[광화문에서/권순활]‘장관다운 장관’ 윤증현

  • 입력 200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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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고 한다. 중간 간부 시절까지도 눈에 띄지 않던 관료가 벼락출세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학계 언론계 사회단체 등 외부에서 정부에 영입된 인사들에 대한 평가 역시 대체로 차갑다. ‘장관감이 안 되는 장관’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을 전현직 공무원들이 털어놓는 모습을 심심찮게 봤다.

요직에 임명된 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 경우도 꽤 많았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의미 있는 정책은 뒷전이고, 경력이나 연령 면에서 비교도 안 되는 새파란 실세(實勢)들의 눈치를 보면서 추종하거나 심지어 목소리를 더 높이기도 했다.

그들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 사람이 정말 내가 알던 그 사람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인간과 권력에 대한 회의(懷疑)를 느꼈다. 자리 지키기도 중요하지만 너무 ‘오버’한 사람의 뒤끝이 어떻다는 것은 역대 정권의 경험을 통해 알 만도 하련만.

현 정부에서도 이런 공직자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화물연대 파업 때 원칙을 굽히지 않고 대처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취임 당시의 ‘노조 편향’ 우려와 달리 한국의 잘못된 노동운동을 질타한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용지 선정 문제를 마무리한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있었다.

최근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문제와 관련해 ‘경제 논리’를 강조하고, “금융자본은 하루아침에 육성되지 않는데 산업자본이라고 대못질을 해 못 쓰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일갈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특히 눈길을 끈다. ‘정치 논리’를 역설한 대통령은 섭섭할지도 모르지만 내각에 이런 각료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의 복(福)’이다.

현란한 구호만 무성했던 현 정부에서 윤 위원장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8년이나 질질 끈 생명보험사 상장(上場) 문제는 그의 소신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여전히 한 걸음도 못 나갔을 것이다. 한국 금융의 빅뱅을 몰고 올 자본시장통합법 제정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정부나 외국자본만이 국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한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점차 현실적 설득력이 커져 가고 있다.

그는 3년간의 금감위원장 재임 기간을 “하나하나가 ‘반근착절(盤根錯節)’을 풀어 가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서린 뿌리와 뒤틀린 마디’라는 뜻의 반근착절은 중국 후한서 우후전(虞후傳)에서 유래된 말로 얽히고설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뜻한다. 반(反)시장-반기업 마인드가 강한 정권에서 생보사 상장이나 자통법, 금산(金産) 분리 재검토 같은 민감한 정책을 추진하거나 강조한 공직자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정책을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도 받았지만 시장 및 기업친화적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경제정책의 적합성을 시대상황과 떼 내서 생각할 수 없다면 지금 한국에서는 그가 선택한 정책 방향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경제 관료로서의 영욕(榮辱)을 함께 맛본 뒤 제대로 ‘장관다운 장관’을 한 윤 위원장은 다음 달 초 임기만료를 맞는다. 본인도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 자유인으로 돌아가겠다”면서 퇴진을 기정사실화했다. 3년 임기를 채우고 떠나는 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금감위원장으로 쌓은 명예를 앞으로도 흐트러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권순활 경제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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