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기자로 산다는 것

  • 입력 2007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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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소스라치게 놀라 깬 다음 목에 건 스톱워치를 들여다보았다. 오전 7시 반. 가슴이 철렁 무너져 내렸다.

1989년 수습기자 시험에 합격한 뒤 경찰서에 처음 투입된 1990년 초 추운 겨울날이었다. 오전 2시까지 경찰서 몇 군데를 돌며 취재를 끝낸 뒤 한 경찰서 숙직실에 누웠다. 전날 청계천에서 산 스톱워치 겸 알람시계를 목에 건 채. 오전 4시에 2진 선배에게 보고해야 하므로 알람소리가 제일 큰 것으로 샀지만 허사였다.

당시 석간이던 본보의 경찰 기자들에게 7시 반이면 사실상 ‘상황 종료’. 내 전화를 받은 1, 2진 선배들은 살면서 그때까지 들은 욕을 합친 만큼의 욕을 한꺼번에 퍼부었다. 나의 경찰 수습기자 첫날은 이렇게 엉망이었다.

이어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취재하는 훈련 과정에 투입됐다. 당시 선배들의 속사포 같은 질문은 언제나 수습기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자상(刺傷·칼에 찔린 상처)은 몇 군데, 각각 너비와 깊이가 몇 cm야?” “범인이 들어온 창문의 가로세로 길이는?” “시위 인원은 경찰 추산 몇 명, 시위대 주장 몇 명인가?” “시위대는 몇 km 행진했지?”….

처음엔 ‘뭐 이런 것까지 묻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점차 그런 사소한 팩트(fact)들이 거대한 사건의 향방과 전모를 결정한다는, ‘팩트의 힘’을 알게 됐다.

이리 구르고, 저리 기어서 겨우 수습 딱지를 뗀 지 벌써 만 17년. 노무현 대통령은 말끝마다 ‘신문 권력’을 얘기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 과정에서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과거보다 방송매체의 파워가 커졌고, 인터넷이 출현했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새로운 시련을 안겨 줬다. 잦은 언론중재위 제소로 중재위의 ‘피고(피신청인)석’에 앉는 것까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기자=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비양심 특권집단’으로 매도하는 것만은 참기 어렵다. 도대체 기자에게 어떤 기득권과 특권이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노 대통령 얘기대로 기자실을 이용하는 것이 특권이라고 치자. 그 특권을 이용해서 기자들이 얻는 것이 무언가. 돈인가? 권력인가? 국정에 접근하는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뿐이다.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등 각종 특권의 집합체가 대통령이다. 한번 하면 종신토록 연금을 비롯한 각종 특권이 보장된다. 그런 대통령이 국정을 감시하라고 국민이 세금으로 만들어 준 기자실 이용을 특권이라고 말할 순 없다.

알량한 기자실 이용이 특권이라면 ‘코드’ ‘낙하산’ ‘보은’ 인사로 선거에 떨어지고도 장관과 공기업 감사 등 고위직을 꿰차며 패자부활이 불가능한 서민들을 울리는 ‘불패(不敗)의 측근’들은 ‘대권(大權)’을 누리는 셈이다.

노 대통령에게 기자실이 ‘딱 죽치고 앉아 기사를 가공하고 담합하는 곳’이란 오해를 심어 준 이들은 권부에 있는 몇몇 기자 출신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실제 기자실에서 어떤 일이 이뤄지는지 모른다. 작은 팩트 하나 때문에 얼마나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는지…. 제대로 기자실을 출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수습기자 코스 등 엄격한 기자 훈련도 받지 않았다.

2류 기자들에게서 나온 3류 정책이 ‘21세기 선진 한국’의 언론 자유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기막히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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