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희]떳떳한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 입력 2007년 6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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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회 개원 59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국회 앞뜰에 심은 금강송을 바라보며 덕담을 나눴고, 지난 1년간 의정활동 지원에 공헌한 국회 우수 직원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내년이면 건국 60주년이고 국회 역시 환갑을 맞지만 정치의 본산인 국회를 향한 국민의 시선은 점차 싸늘해지는 듯하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의원들

국회의 중심적 행위자인 여야 국회의원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대선 정국의 휘몰이 바람 속에 제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국회의원의 모습과 검찰에 기소돼 수시로 법정에 서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검찰에 기소된 국회의원 수는 122명으로 김영삼 정부 시절 46명, 김대중 정부 시절 72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의원직을 잃은 의원도 18명으로 과거 어느 정부보다 많다. 과거보다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의 규정이 강화되고, 검찰의 법집행 의지가 강해진 이유가 있겠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실정법을 어겨 법정에 서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한 국가의 정치 발전 수준을 측정하는 지수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 가장 핵심적인 변인의 하나로 정치 엘리트의 지적, 도덕적 수준을 꼽는다. 정치 엘리트가 정치체계의 구심적 존재이기에 정치체계의 기능은 정치 엘리트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민주정치의 본질인 자유, 평등, 법치가 정치 엘리트의 본성인 권력욕과 대치되는 개념임을 감안할 때 정치 엘리트의 도덕성과 능력은 정치 발전에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17대 국회 이후 과거에 비해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 관련법이 강화돼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옥죈다는 볼멘소리가 있으나 이러한 추세는 과거 부정적 정치 관행을 뿌리 뽑자는 유권자의 요구를 반영한다.

아직도 공천 과정에서 불거지는 금품 수수 비리와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간의 유착에서 나오는 비리와 부패가 드러난 상황에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은 더욱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 늘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으로 어떻게 의정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교도소의 담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떳떳하게 의정활동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 또는 국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투명성, 그리고 정치의 신뢰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더욱 절실하다. 재벌 총수의 폭력사건, 지방자치단체장과 공기업 감사의 관광성 외유 행차를 바라보는 유권자는 ‘윗물’의 깨끗함을 아쉬워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통령 선거에 쏠려 있는 시선의 일부를 내년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로 돌리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대통령 후보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도덕성-능력 겸비 인재 없나

동시에 같은 비중으로 국회의원의 됨됨이가 중요하다.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국민의 대표로서 예산을 심의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능력과 도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스스로의 위치와 역할을 재확인하고 법의식을 확고히 할 때 선진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

12월 대통령 선거에 다걸기(올인)하는 유권자와 시민단체는 17대 국회의 마무리를 철저히 감시하고, 18대 총선에 등장할 후보자를 검증할 잣대를 마련해야 한다. 한 명의 대통령을 선출하기보다 300명 가까운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더욱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내년 국회 개원 60주년을 맞을 때는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국회의원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한국정치학회 차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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