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다시 보는 국수전 명승부…바둑계를 강타한 쓰나미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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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1세의 나이로 입단한 이창호는 1989년 8월 김수장 7단(당시)을 누르고 KBS바둑왕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스승 조훈현의 반응은 “어이쿠!” 이 한마디였다. 세계 최연소 타이틀 보유자를 맞는 바둑계의 반응이기도 했다. KBS바둑왕전이 TV 속기전이라고는 해도 14세의 챔피언은 경악스러운 사건이었다.

이보다 앞서 1988년 말 최고위전에서 이창호는 스승에게 도전장을 낸 바 있었다. 이때도 13세 도전자의 출현에 발칵 뒤집어졌는데 조훈현이 3 대 1로 제자의 쿠데타를 다스리자 “그럼 그렇지”라며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이어 1989년 패왕전과 국수전 도전기에서도 거푸 제자를 물리치자 “당분간 스승의 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이 대세였다. 하지만 1990년 초 두 번째 찾아간 최고위전에서 스승을 3 대 2로 누르는 파란을 일으켰고 눈앞에 펼쳐진 ‘하극상(?)’의 진풍경에 관객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반 년 전 KBS바둑왕 획득이 돌풍이었다면 최고위 등극은 태풍이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도 ‘스승의 방심이 빚은 일회성 파란’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랬는데 이들도 국수전 3 대 0의 스코어 앞에서는 할 말을 잊었다. 15세 국수 탄생은 바둑계의 쓰나미였다. 당시 월간바둑이 뽑은 머리글은 이랬다. “새 소년 국수를 맞는 기쁨이냐, 너무 빠른 대혁명을 보는 우리 바둑계의 슬픔이냐!”

백 ○로 젖혔다. 비장한 승부수다. 이때 축머리를 겸해 들여다본 흑 57이 너무 손바람을 낸 수. 참고1도처럼 물러섰으면 늪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백 58로 결의를 다질 때도 흑은 59로 뚫어 희희낙락이다.

백 60은 이판사판이다. 흑 69가 패착. 참고2도 흑 1이 급소였다. 백 70부터 82까지 역공을 당하자 개펄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해설=김승준 9단·글=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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