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구청들의 ‘작지만 큰’ 개혁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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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생들이 가장 많이 접속하는 사이트는 교육방송(EBS)이다. 하지만 공부깨나 한다는 학생들 사이에선 하루 10만 명이 접속한다는 서울 강남구청의 인터넷 수능방송 사이트(edu.ingang.go.kr)가 더 유명하다. 연회비 2만 원만 내면 언어, 수리, 외국어 등 6개 영역에서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구(富者區)’인 강남구가 이런 사이트를 마련한 것은 수준이 높다는 대치동의 사교육 인프라를 전국의 모든 학생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자치구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셈이다.

▷서울 노원구 주민들은 요즘 구청에 자주 들른다. 민원업무 때문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62만 인구에 미술관 하나 없는 노원구는 구청사 1층과 2층 공간을 리모델링해 271평 규모의 갤러리를 만들어 이달 초 개관했다. 주민들이 퇴근 후에도 와서 볼 수 있도록 연중무휴로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민선 구청장체제의 출범과 함께 자치구들의 대민 행정이 달라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처음엔 청사 신축, 지역축제 등 전시성 이벤트에 쏠리던 행정력이 요즘엔 주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행정서비스 개혁에 집중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는 여권 발급 기간을 이틀로 단축한 ‘여권 익스프레스 제도’를 실시해 박수를 받고 있다. 직원들이 야근을 하면서 신청 물량을 소화해 낸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구청은 주민등록, 호적, 토지, 건축, 교통, 수도, 청소 등 주민생활과 직결된 행정서비스를 담당한다. 그래서 구청 단위의 행정 개혁은 규모는 작아도 민생 만족도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 자치구의 성공적 개혁 실험을 광역자치단체가 흉내 내기도 한다. 서울 마포구가 시작한 동사무소 통폐합 실험을 서울시가 확대하려는 것도 그런 예다. 자치구의 행정 개혁이 활발한 이유는 간단하다. 구청장이 유권자인 주민들을 바라보고 일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요란하게 혁신하는 중앙 정부에도 이런 변화가 오긴 올 것인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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