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위용]“러 방송뉴스 시작과 끝은 정권 옹호”

  • 입력 2007년 5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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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라디오 뉴스의 시작과 끝 부분은 긍정적인 기사로 채워져야 한다. 부정적인 뉴스는 전체의 49%를 초과할 수 없다.’

최근 사직한 러시아뉴스서비스(RNS) 방송사 기자들은 20일 러시아 야당 야블로코 당이 개최한 집회에서 방송 검열 실태를 이같이 폭로했다.

반(反)크렘린 시위를 취재했지만 기사가 방송되지 않아 동료 7명과 함께 사직했다는 한 기자는 “기자들이 집권당 노선을 앵무새처럼 전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의 폭로는 러시아 신문 일부에 보도됐을 뿐 러시아 3대 방송사인 ‘제1채널’ ‘러시아’ ‘NTV’에서는 하루 종일 토막뉴스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날 밤 세 TV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가 병원 개혁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자세히 보도했다.

시청률이 높은 오후 8∼10시에 크렘린 고위 관료들의 동정을 주요 뉴스로 장식하는 것은 최근 러시아 방송의 관행이 됐다. 올해 12월 총선과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나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대선 주자들의 얘기가 뉴스의 첫 장면으로 나오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21일 모스크바의 한 대학 강사는 “러시아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이 행간을 읽을 기회까지 막는다”고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제1채널과 러시아 방송사는 대주주가 러시아 정부로 바뀌었다. 한때 독립 언론으로 이름을 날렸던 NTV의 경영권도 러시아 국영기업인 가스프롬으로 넘어가 정부의 언론 통제 욕망은 가뜩이나 의심을 받아 왔다.

러시아 야당 지도자들과 일부 지식인은 “방송 검열은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의 신보도지침”이라며 공격의 날을 세웠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와 경제 협상을 할 때도 언론자유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상대국의 언론 자유 없이는 계약과 통상의 자유도 확보하기 어렵고 관료들의 부패에 따른 거래 비용 증가도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인식이다.

“방송 검열과 보도 지침이 국가의 장래에 극히 위험하다”는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야블로코당 당수의 말은 다시 도마에 오른 러시아의 언론자유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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