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재완]‘공룡’ 포털, 책임은 ‘쥐꼬리’

  • 입력 2007년 5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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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도난당한 책을 학교 앞 헌책방에서 발견한 가슴 아픈 경험이 있는가. 주인에게 “왜 훔친 책을 파느냐”고 따져 보지만 “몰랐다”는 한마디에 기운이 쑥 빠진다. 주인의 항변도 일리는 있다. 헌책을 팔려고 오는 사람이 진짜 주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권한도 방법도 그에게는 없다.

“몰랐다” 한마디로 발뺌 일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크지만 이를 대하는 포털의 태도는 헌책방 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포털에 게재된 기사나 댓글을 통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안이 나타나도 “몰랐다”는 한마디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법적으로 보면 훌륭한 전략이다. 명예훼손의 글이 전달되는 데 기여했더라도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태라면 책임을 물릴 수 없다. 책방 주인에게 판매한 책의 내용에 대해서 책임지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포털의 태도는 법리적으로나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모두 잘못이다. 국내 포털은 동네 책방이라고 볼 수 없다. 모든 정보가 포털로 몰리고, 누리꾼의 힘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한국처럼 언론사가 자신이 생산한 기사를 모두 포털에 파는 나라도, 포털이 기사마다 댓글을 달도록 허용하는 나라도, 누리꾼이 자신의 지식과 감정을 여과 없이 분출하는 나라의 예도 찾기 힘들다. 그 결과 포털은 ‘지식의 보고’가 되기도 하고, 절제되지 않은 ‘욕망의 해우소(解憂所)’가 되기도 한다. 요즘 식자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전자보다 후자의 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누리꾼의 댓글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포털 사이트 운영 회사 4곳에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우리 특유의 포털 문화를 직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포털은 언론사에서 받은 기사를 그대로 게재했고, 누리꾼은 기사에 익명으로 등장한 인물의 신원을 밝히고 그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면서 발생한 사안이다.

전통적인 사고에서 보면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을 부담시킬 사람을 찾기 힘들다. 신문사는 익명으로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에, 신원을 밝힌 누리꾼은 허위의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포털은 정보가 확산되는 역할을 했을 뿐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항변한다.

법원은 포털이 책방과 다르다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재판부가 적절히 지적한 대로 “포털은 독자의 흥미를 위해 기사 제목을 바꾸기도 하고 기사 아래 댓글을 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여론 형성을 유도”하면서 보통의 책방 주인과 달리 행동한다.

이번 판결로 모든 댓글에 대해서 포털에 책임을 물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임을 물리면 문제가 더 커진다. 포털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글은 모두 삭제할 것이다. 즉 사적 검열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 사안처럼 조회수가 많고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오른 경우에는 포털이 문제를 알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고, 책임을 물리는 것이 타당하다.

댓글 명예훼손 배상액 너무 적어

바로 그 때문에 판결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이번 판결로 4개 포털이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액은 총 1600만 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 금액으로 포털의 자세가 크게 바뀔 것 같진 않다. 책임을 물어야 할 분명한 사안에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포털은 마인드를 바꾸어야 한다. 지식의 보고로 포장해 사세를 키웠으면 우리 사회를 지식사회로 발전시킬 책임 역시 부담하는 것이 옳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역할 역시 포털의 몫이다. 해우소에 파리가 몰려든다면 해우소를 없애든가, 구조를 바꾸든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청소라도 자주 해야 한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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