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오늘 방미하는 아베 총리께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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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께서 취임 후 오늘에서야 미국을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 얼핏 ‘어, 아직까지 미국을 안 갔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총리가 취임하면 당연히 미국을 먼저 방문하는 게 그동안의 관례였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작년 9월 26일에 취임했으니 꼭 7개월 만이군요. 역대 총리 중 두 번째로 늦은 미국 방문이라지요.

총리께선 취임 후 한국과 중국, 유럽을 먼저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언론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아시아 중시 외교’에 나섰다거나 ‘이례적인 선택’이라고 지적했던 걸 기억합니다. 일본이 ‘미국 일변도 외교’에서 탈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군 위안부’ 미국 아닌 일본이 해결할 일

그러나 너무 앞선 얘기지요. 다른 나라를 먼저 방문한 건 ‘전략적 선택’일 뿐이고 미일 관계는 일본의 생존과 직결되는 ‘전략 그 자체’인데 미국 탈피라니요. 미일은 1945년 종전 후 2인3각 외교를 통해 경제동맹을 거쳐 이제는 안보와 군사 분야에서도 순망치한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양국은 더 나아가 총리께서도 얘기했듯 ‘더욱 넓고 깊은 동맹’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총리께서 미국에 가서 무엇을 논의하고 무엇을 합의할지는 지켜보면 되겠지요. 그러나 총리께서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잇달아 내놓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은 신경이 쓰입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고, 일본과 미국의 유력 신문들과 인터뷰하며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사과’와 ‘책임’에 무게가 실렸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기자는 총리께서 미국 방문을 앞두고서 그런 발언을 하는 게 영 석연치가 않습니다. 짐작은 갑니다. 일본으로서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국의 협조가 아쉬운 때입니다. 그런 마당에 똑같은 인권 문제인 군 위안부 문제와 납치 문제에 일본이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고 싶었겠지요.

그런 ‘의도’가 보이니 두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총리의 ‘소신’이 정말 바뀐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 후퇴에 불과한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의문은 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 소재에 대한 총리의 생각입니다. 냉정히 얘기해 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제3자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피해국보다 미국 쪽 분위기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미국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을 저지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미국이 일본의 역성을 들어 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겠습니까. 이 문제는 결국 일본이 짊어지고 해결할 일입니다.

문제가 여기까지 온 데는 총리의 책임이 큽니다. 일본은 군 위안부 문제를 방어할 수 있는 좋은 ‘방패’를 갖고 있습니다. 1993년의 ‘고노 담화’입니다. ‘고노 담화’가 뭡니까. 일본 정부가 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죄한 국가 공식 문서입니다. 총리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노 담화’의 그늘에만 있었어도 평지풍파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총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군색한 논리로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결의안이 통과돼도 사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던 분이 갑자기 ‘사과’와 ‘책임’을 얘기하니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강제성 인정해야 납치 문제도 진전

총리께 부탁드립니다. 이번 미국 방문 중 군 위안부 문제만큼은 미국에 기댈 생각을 접어 주십시오. 오히려 이번 방미가 어느 국가도, 어느 누구도 호도할 수 없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성찰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그러고 나서 군 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해 주길 기대합니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주일미군 재편과 이라크 부흥 지원, 북한 핵과 일본인 납치 등 다양한 문제가 테이블에 오를 것입니다.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와 미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문제도 논의되겠지요. 한국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부디 많은 성과를 거두고 귀국하시길 바랍니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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