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 버지니아 사건 보도와 인권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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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윤영철 위원, 김일수 위원장, 황도수, 양우진 위원(왼쪽부터)이 24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버지니아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신원건  기자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윤영철 위원, 김일수 위원장, 황도수, 양우진 위원(왼쪽부터)이 24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버지니아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신원건 기자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보도와 관련해 범인 조승희의 가족, 주변 인물은 물론 희생자들에게까지 인권 침해가 심각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개인의 범죄를 집단의 공범 의식으로 몰아가는 등 방향감을 상실한 보도 경향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4일 본사 회의실에서 ‘버지니아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양우진(영상의학과 전문의)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황도수(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인권 차원의 문제점부터 살펴보지요.

▽김일수 위원장=가해자가 자살하는 바람에 범죄 피의자에게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인권 규범이나 형사법적 절차가 전혀 작동하지 못했고, 언론도 한계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조승희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을 둘러싸고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부분까지 확대되며 국면 키우기 경쟁이 벌어졌으니까요.

▽윤영철 위원=희생자의 사진을 마구 싣는 등 초상권 침해는 물론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추측 보도까지 난무했습니다. 여자친구 문제가 마구 등장했지만, 결국은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요.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인권 침해도 심각했습니다. 보도량의 문제는 물론 보도의 수준은 더욱 한심했습니다. 지역방송이 조승희 부모의 자살 소문을 언급하자 ‘자살 기도’ ‘중태’ ‘사망’ 등 실체 확인도 없는 성급한 받아쓰기 양상마저 보였거든요.

▽양우진 위원=첫 보도부터 모든 매체가 ‘총기난사 용의자는 한국 국적’이라고 보도하면서 ‘교민에 대한 보복 확산’ 우려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전근대적 연좌제 개념이 ‘사돈의 팔촌’까지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한 셈입니다. 타깃이 없다 보니 파고들어가다 못해 조승희의 외조부와 외삼촌 인터뷰까지 내보냈는데, 가십 수준을 넘지 못했다고 봅니다.

▽황도수 위원=국내에 사는 조승희 친인척은 물론 초등학교 때 교사, 이웃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이 등장했는데, 법적 요건을 제대로 갖춘 보도인지 궁금합니다. 당사자가 인터뷰에 응했으니 법적 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경황없이 “내 가족 중에 범인이 있다”는 연좌제적 공동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상황에서, 과연 동의로 인정하고 허용해도 되는지요. 조승희 누나에 대한 언론의 인터뷰도 사회적 책임을 묻는 분위기로 흘렀습니다. 비록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누나의 사진을 싣고 실명과 나이, 학교, 직장까지 자세하게 공개하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는 판단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조승희 동영상’ 보도도 윤리적 논란이 됐습니다.

▽윤 위원=미국 NBC방송이 내보낸 동영상과 사진이 확산되면서 인권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총과 칼을 들이대며 분노의 눈빛을 쏘아대는 섬뜩한 영상이 과도하게 반복 방영되면서 부정적 고정관념이 굳어지지나 않을지 우려됐습니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을 심층적인 탐사보도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이 아쉽습니다.

▽양 위원=언론은 시청자들의 평이 좋지 않다는 보도를 하면서 오히려 유포에 일조하는 양상이었습니다.

▽김 위원장=보도량이 과다한 점도 선정성을 부추겼습니다. 특히 참극 자체에 집중하는 정보량은 미흡한 데 비해 민족주의와 연계한 보도량은 폭주했습니다. 개인 책임과 집단적 연대책임은 엄격히 구별되는데도 마치 가족에 책임이 있다는 듯 생활환경이나 가정교육 문제를 노출시킨 것은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입니다. “언론의 인권침해가 거의 범죄 수준”이라는 한 누리꾼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여과 없이 확대하는 신중하지 못한 보도 태도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용의주도하지 못했다는 판단입니다.

―유사 사건에 대한 보도 기준을 마련해 본다면….

▽황 위원=죽은 자는 권리능력이 없다고 마구 밟아대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권리를 가진 가족조차 죄인처럼 손들고 나와서 백기를 올린 상태에 있었으니까요. 법적으로 죽은 자의 명예권에 대한 이론 구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윤 위원=미국의 NBC나 국내 방송사는 범죄자가 무덤 속에서 연출하듯 동영상을 내보냈지만, 캐나다의 공영방송 CBC는 사전 경험을 바탕으로 설정한 자체 가이드라인에 따라 아예 동영상을 방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언론도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 위원장=정신병력이 있다고 범죄자군으로 모는 등 어떤 부류의 사람은 잠재적 위험군이라는 식의 보도를 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양 위원=인종차별 현상은 한국인이 세계 제일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한국인들끼리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현지인을 역차별하는 듯 느껴집니다. 현지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뿌리박혀 있다고나 할까요. 국내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봅니다. 이번 사건이 국내의 인종차별 현상을 시정해 나가는, 특히 국내에서 발생하는 외국인 범죄를 우리 언론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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