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봄, 경조사 앞에서

  • 입력 2007년 4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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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에는 부고가 연이어 전해지더니, 화창한 봄이 되자 결혼식 소식이 이어진다. 결혼식은 대부분 청첩장을 통해 연락을 받게 되고, 부고는 주로 휴대전화나 신문의 부고란을 통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이에게서 뜻하지 않은 경조사 연락을 받게 되는 수가 있고,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이한테 ‘염치없는’ 통보를 받을 때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당하게 재혼식 소식을 전해 오는 동창도 있고, 부모가 아닌 자녀의 죽음을 통보받게 되는 황망한 사례도 있다.

결혼식장보다는 상가에

경조사 소식을 듣게 되면 보통의 직장인은 두 가지 번민에 빠지게 된다. 직접 가 볼 것이냐 아니냐와 축의금 또는 조의금을 얼마로 할 것이냐다. 각자의 일상이 바쁘다 보니 연락을 받을 때마다 다 가 볼 수도 없고, 경조비로 들어가는 금액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꼭 다녀와야 할 곳을 빠뜨리면 아무래도 마음이 찜찜하다. 마당발 소리를 듣는 인사나 영업직은 결혼 시즌 주말마다 서너 곳을 연속으로 돌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인적 네트워크 관리는 사실상 경조사 관리나 다름없다.

고위직에 있었던 남성일수록 은퇴 후 ‘체면 유지’에 대한 번민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하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함께 누린 것이나 다름없는 아내조차도 남편이 퇴직 후 왜 그렇게 남의 경조사에 쫓아다녀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언젠가 미국에 체류 중인 예비역 고위 장성에게서 “현직에서 물러난 뒤 몇 년간은 경조사비 부담 때문에 차라리 외국에 나와 지내는 것이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권력자의 경조사가 자연스러운 뇌물 전달 창구로 이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정권 어느 권력 실세의 자녀 결혼식장에 들어온 축의금이 대형 스포츠 백 여러 개에 담겨 실려 나가는 것을 목격한 바 있으며, 권력 비리 수사에서 경조사에 수억 원대의 축의금 또는 부의금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도 있다. 잘나가는 이들 중에는 “아무래도 현직에 있을 때 아이들 짝을 지어 주는 것이 좋다”며 자녀들 결혼을 재촉하는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자식의 결혼식은 서둘러 치른다 해도 부모더러 일찍 돌아가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결혼식은 축의금 전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호텔이건 예식장이건 도떼기시장 같은 우리네 결혼식장 풍경에다, 결혼 축하보다 축의금 접수와 눈도장 찍기, 그리고 식장보다 식당에 더 관심을 쏟는 세태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례식장은 되도록이면 찾아보려고 애쓴다.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데다 내 삶의 현주소도 점검해 볼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외롭고 쓸쓸한 상가에 다녀올 때면 힘들어도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장점 살리되 고쳐야 할 경조사 문화

경조사비는 나름대로 정해 둔 원칙에 따라 집행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혼주 또는 상주와의 친소 관계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남성이 아내 몰래 비자금 통장을 만드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경조사비 지출에 대한 대비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사회 활동을 하지 않은 아내는 한국 사회에서 경조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하기 어렵다.

상호부조적인 장점도 적지 않은 한국의 경조사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진심으로 축하하고 애도하기에 앞서 경조사 소식이 세금고지서처럼 느껴지도록 하거나 노후 은퇴자의 정신적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현실은 이제 고쳐야 할 때가 됐다. 실제로 경조사비 조달이 여의치 않아 지인들과 연락을 끊다시피 지내는 사람도 있다. 와 주신 분은 고맙고 그렇지 못한 분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봉투의 무게가 축하나 애도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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