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원자력과 가이아

  • 입력 2007년 3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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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러브록 박사는 몰라도 ‘가이아 이론’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이름을 딴 가이아 이론에서는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결합된 단일한 유기체로 본다. 이 이론의 주창자인 러브록 박사는 대기(大氣)는 서로 연결돼 있으며 대기란 기온 조절을 위한 가이아의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구체적 증거가 없는 황당무계한 이론이라는 학계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환경론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로 올해 87세인 러브록 박사가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의 대량 확산을 주장해서다. 환경론자들이 기겁할 얘기다. 그는 반핵(反核)을 존립 근거로 하는 환경단체들에 대해 언제 상용화될지 모르는 미래의 청정에너지에만 매달려 있는 ‘그린 로맨티시즘(Green Romanticism)’의 환상을 깨라고 주문한다.

온실가스 감축 압력에 직면한 각국은 일제히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를 지구를 구할 신병기로 들고 나오고 있다. 2주일 전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정상들은 현재 유럽 내 에너지 소비량의 6.5%인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올리기로 결의했다.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올해 연두교서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천명했다.

재생에너지란 에탄올과 같은 바이오연료나 태양력 풍력 등을 일컫는다. 태양과 바람이 있는 한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 틀림없다. 누구나 온실가스를 뿜지 않는 이런 에너지원을 석유 석탄의 대안으로 생각할 만하다. 그러다 보니 벌써부터 재생에너지는 시장의 새로운 캐시플로가 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닷컴 기업에 빗댄 ‘와트컴(Wattcom)’이 부상 중이다. 전력 단위인 와트(Watt)에서 따온 이 신조어는 기술력과 자금이 재생에너지산업으로 모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2.1%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미래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바이오연료를 얻기 위해 필요한 곡식을 재배할 땅이 있는가, 태양광 채집기나 풍력발전소를 지을 공간이 충분한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재생에너지는 제조원가가 비싸고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재생에너지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양을 충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재생에너지는 산업보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생활 방식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러브록 박사의 원자력 확대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그의 전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울하다. “핵전쟁도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재앙만큼 지구 전체를 황폐화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원자력은 편의성이 큰 만큼 안전성에 대한 위험이 크기 때문에 섣불리 확대를 주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젠 원전 리스크만큼이나 온난화의 위험도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1979년 스리마일 섬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중지한 미국이 얼마 전부터 이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구온난화는 에너지 문제에 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무조건 원전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도 이젠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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