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신욱]검사(檢事)와 진실

  • 입력 2007년 3월 1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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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검사가 조사받는 사람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고 해서 세상이 시끄러웠다. 언론에 보도된 녹취 내용을 자세히 보면 검사가 과연 거짓말을 요구했는지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세상 사람은 이미 검사가 거짓말을 강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 두려운 점은 사회 정의의 구현을 긍지로 삼고, 밤낮 없이 일하는 대부분의 검사마저 더불어 지탄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형사소송법은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대해 사법경찰 관리가 작성한 조서보다 높은 증거 능력을 부여한다. 검사의 법률적인 소양과 함께 인격을 인정해서다. 거짓 진술을 강요한다면 검사가 작성한 조서를 증거로 삼을 기초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검찰에 대한 국민의 가장 큰 불신은 일부 검사나 수사관이 진실을 밝히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수사기록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편파적으로 수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조사받는 사람 위에 군림하는 자세로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심지어 인격에 상처를 주는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는 데서 나온다.

사법정의 실현에서 보람 찾아야

진실의 발견은 수사의 생명과 같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피의자는 물론 관련자도 자신의 처지에 따라 허위 진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피의자에게는 진술거부권이 주어져 있고,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과는 달리 수사기관에서 진술하는 참고인은 거짓말을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으니 과거 사실의 진실을 밝히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검사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고, 선과 악을 가리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인간을 성찰하고, 정실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자기 수양을 해야 한다. 재야에 있어 보니 의외로 검사의 수사결과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가 많음을 느낀다.

검사는 혼신의 노력으로 진실에 접근하고 무서운 집념으로 악을 응징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차적 정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형사소송법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보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옹호 등 적법 절차를 더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지 않은가! 수사결과가 아무리 진실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조사받는 사람의 인격권이 침해되는 등의 잘못이 있다면 수사는 성공했다고 할 수 없고 정의라고 할 수 없다.

검사는 결코 수사를 권력의 행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사권은 제대로 행사하면 정의의 칼이 되지만 남용하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짓밟는 추한 모습의 비열한 권력행사가 되어 버린다. 인권을 존중하고 적법 절차에 충실하면서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조사받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해 주면서도 그 사람의 순간적인 낌새를 맡을 수 있고(온이능찰어기미·溫而能察於機微) 부드럽게 대해 주면서도 엄정함을 잃지 않는(화이당불실엄정·和而當弗失嚴正)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검사는 수사 실적이나 공명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출세하려는 생각보다는 한 사건 한 사건에서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

검사는 외유내강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검사가 아무리 부드럽게 하고 자세를 낮추어도 조사받는 사람은 검사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 검사의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배려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이유 없이 피의자를 윽박지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마음속으로 검사를 경멸할 것이다. 검사야말로 범죄는 미워하되 범죄인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거짓 진술 강요’ 싸늘한 여론

일부 검사 사이에 자백감형제도(플리바기닝)의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 같다. 수사가 어렵다고 해서 범죄인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방안은 국민의 법 감정에 맞지 않고 형사사법 정의의 실현이라는 이상에도 맞지 않다.

검사들은 현재 쏟아지고 있는 비난과 질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의연한 모습으로 사회악과 맞서 싸워 주길 바란다. 우리는 냉정하면서도 부드럽고 겸손한 자세로 거악을 척결하는 검사의 모습을 보고 싶다.

강신욱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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