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성호]리더십의 위기? 기본으로 돌아가라

  • 입력 200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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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리더십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 산업 역군의 추진력 속에 어른거리던 몰(沒)가치의 그림자, 민주투사의 진정성에서 배어 나오던 현실 감각의 결여, 그리고 그 양극단을 벗어나지 못하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후예들에게서 리더십 위기의 맨얼굴을 본다. 우려가 큰 만큼 처방도 다양하다. 그러나 리더는 “정치를 알아야 한다”느니 “경제가 정치다”라며 불거지는 리더십 논란을 보며 혼돈이 가중되는 느낌을 받는다. 무릇 위기의 시대는 혼돈의 시대이기도 한 법이다.

위기와 혼돈을 극복하는 첩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선인들의 말씀처럼 기본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복잡해 보이는 문제일수록 그 핵심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기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판단(judgement)이다. 상충하는 가치와 이해관계 사이의 최소공배수, 그리고 중첩되는 공익의 최대공약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이 리더십의 기본이다. 판단의 기본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규범성과 실증성이다. 리더의 판단은 공익에 비추어 ‘옳은(right)’ 길이 무엇인가, 그리고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맞는(correct)’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숙려(熟慮)의 결과다. 즉, ‘목적합리성’과 ‘수단합리성’이라는 상이한 종류의 이성을 요구하는 복합적인 판단 과정의 산물이 바로 리더십이다.

가슴 없는 보수, 머리 없는 진보

이렇게 볼 때 리더십의 위기란 곧 대학 교육의 기초 부실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규범과 현실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이성의 배양이야말로 대학 교육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 과거 한국 대학들이 흔히 간과해 온 교육적 사명이기도 하다. 숱한 산업 역군과 민주투사는 배출했을지언정 우리 시대에 절실한 통합적 리더를 키워 내는 데는 한계를 보여 온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대학 개혁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추진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혁의 결과 대학 교육이 그 본령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이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대학도 산업이다’고 착각하는 교양 없는 정부, 당장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총알받이를 내놓으라고 강짜 부리는 근시안적 기업, 그리고 산업과 기업이 되지 못해 스스로 안달하는 줏대 없는 대학. 어디를 둘러봐도 대학 교육의 본령에 대한 성찰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집안이 답답하면 창 너머로 눈이 가기 마련이다. 마침 지난달 미국 하버드대가 30년 만의 ‘교양교과과정 개편안’(www.fas.harvard.edu/curriculum-review)을 발표했다. 세계화가 개혁의 화두라는 점에서는 우리와 별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개혁의 방향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번 개혁을 주도한 문리대(文理大) 커비 학장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이번 개편을 통해 우리는 전통적인 인문·사회·과학교육(liberal education)이 우리의 원칙임을 다시금 천명합니다. 우리는 기능(¨Ubung)이 아닌 교양(Bildung)을 강조하고, 불편부당한 진리 추구가 그 자체로서 목표임을 재확인하며, 철 이른 전문화와 기능교육에 대한 모든 압력을 거부합니다.”

이 오롯한 상아탑의 고고한 자긍심 속에 바로 하버드대가 전 세계 리더의 산실인 이유가 담겨 있다. 규범을 헤아리는 깊은 속, 현실을 아우르는 밝은 눈은 전문화된 기능교육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오히려 대변혁의 시대일수록 기초교육만이 궁극적인 리더십 교육이라는 것이 하버드대의 결론이다. 이는 곧 시대는 변하고 변화는 위기와 혼돈을 수반하지만, 대응의 정도(正道)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라는 우리 선인들의 지혜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버드大 기초교육 강화의 뜻

이제 한 가지는 확실히 하자. 한국 대학 교육의 문제는 대학이 현실과 유리된 고고한 상아탑이어서가 아니라 오롯한 상아탑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슴 없는 보수’, ‘머리 없는 진보’가 이토록 나라를 어지럽힐 리 만무하다. 이런 와중에도 산학 협동과 연구 중심의 미명 아래 가뜩이나 부실한 대학 교육이 기능인 양산으로 내몰릴 때, 통합적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갈망이 깊어질 것은 자명하다.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도를 지키는 대학, 우직할 정도로 기본에 충실한 대학 교육. 거기에 바로 리더십 위기를 극복하는 첩경, 미래의 리더를 꿈꾸는 대학 새내기들이 다잡아야 할 학문의 초심(初心)이 있다.

김성호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 sunghoki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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