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공계의 블랙홀’ 메디컬스쿨

  • 입력 2007년 3월 12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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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메디컬스쿨) 합격자의 3분의 1이 이공계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공계의 암울한 현실을 웅변한다. 메디컬스쿨 입시전문학원 PMS에 따르면 2005∼2007년 3년 동안 이공계 출신의 메디컬스쿨 합격률은 33.1%였다. 같은 기간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스텍에서 200명 이상,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3개 대학에서만 1000명 이상이 메디컬스쿨에 진학했다. 이공계의 엑소더스라고 할 만하다.

다양한 전공자에게 의사 문호를 개방한다는 취지로 볼 때 이공계 출신이라고 해서 메디컬스쿨에 진학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메디컬스쿨 합격자의 3분의 1이 이공계 출신일 정도의 쏠림 현상은 국가 인적 자원 배분의 불균형이라는 이상 징후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 준다. 포스텍 수석입학, 수석졸업 경력의 촉망받는 여성 과학도가 서울대 의대로 편입한 것은 이공계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다.

산업의 근간이자 미래의 성장동력이 돼야 할 예비 엔지니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을 방치하다 보면 취약한 이공계 기반이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난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인이 과학과 수학, 공학 분야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혁신을 근간으로 하는 작금의 미국 경제를 지탱할 수 없다”고 한 말은 우리에게도 딱 들어맞는다.

메디컬스쿨 쏠림 현상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앞날에도 암울한 전망을 드리운다. 로스쿨이 설립되면 인문계는 물론이고 이공계 출신까지 로스쿨 시험에 뛰어들어 대학교육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헛된 걱정만은 아니다.

우수 이공계 학생들의 메디컬스쿨 러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이공계에 대해 확실한 비전과 대우를 마련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포스텍 졸업 후 서울대 의대로 편입한 김영은 씨의 말마따나 ‘박사학위를 따도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이공계의 위기는 인재 부족이 아니라 비전 부재라는 그의 말에서 국가 차원의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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