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자본주의 공연 관람 김계관의 속내는

  • 입력 2007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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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44번가 세인트 제임스 극장.

히트 뮤지컬 ‘프로듀서스’가 2001년 4월 처음 무대에 오른 뒤 6년 가까이 공연되고 있는 곳이다.

이날은 ‘특별한 관람객’ 한 명이 극장에 왔다.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었다.

이날 오전 김 부상 일행을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서 ‘김 부상이 오후에 뮤지컬을 관람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아무래도 통제된 북한 분위기에 익숙한 김 부상이 중요한 회담을 앞두고 ‘한가롭게’ 뉴욕에서 뮤지컬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뉴욕을 방문한 북한 고위 관료 중 공개적으로 뮤지컬을 관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김 부상 일행을 태운 차량이 갑자기 브로드웨이 극장 쪽으로 방향을 틀자 택시를 타고 뒤따르던 기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취재를 위해 급히 표를 사서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 따라 들어갔다. 극장 안에서 뮤지컬을 함께 보면서 김 부상이 왜 이 시점에 뮤지컬을 선택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대해 친근한 감정을 표시하기 위해서일까, 고도의 복선이 깔린 선전술일까, 아니면 그냥 뉴욕을 방문한 다른 사람처럼 주말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한 것일까….’

김 부상에게 소감을 묻기 위해 다가갔지만 경호원들의 제지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다만 김 부상의 얼굴에서는 이날 극장을 메운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졌다.

김 부상은 나중에 호텔에서 “예술 공연을 관람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철저히 시장원리가 적용되는 ‘문화 상품’이다.

관객(소비자)이 원하지 않으면 바로 공연이 중단되는 반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공연은 10년 넘게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김 부상이 본 ‘프로듀서스’는 ‘예술 공연’ 분야에서도 시장원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적용되는지를 풍자한 작품이다.

김 부상이 뮤지컬을 보고 시장의 중요성을 느끼기를, 그래서 북한도 개방돼 북한 관광객들이 뉴욕에서 뮤지컬을 자유롭게 보게 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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