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버핏의 후계자와 한국의 次期

  • 입력 2007년 3월 4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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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월 말이면 미국 월가(街)는 억만장자 투자자 워런 버핏의 ‘편지’를 기다린다. 때로는 월가나 미국 경제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 위해서, 때로는 자신의 잘못도 털어놓기 위해서 주주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연례 투자보고서)다.

1일 공개된 올해의 편지에서 76세의 버핏은 자신의 후계자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운용을 맡을 사람을 물색 중이라면서, 적어도 몇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버크셔는 주식과 채권, 현금 등 1320억 달러(약 124조 원)의 자산을 굴리고 있다. 이 초대형 자산을 운영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자신보다 훨씬 젊어서 오래 재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단기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핏은 그러면서도 “훌륭한 투자 성적을 낸 똑똑하고도 젊은 친구는 많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했다.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일 때 덜컥 투자해 그동안의 성공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닥칠 유례없이 심각한 리스크들을 인식하고 회피하도록 유전자에 프로그램이 된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늘 투자 거품을 비판하며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만 골라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답다.

버핏이 1965년 인수한 버크셔의 주가는 주당 10달러로 시작해 월가 최초로 주당 10만 달러를 넘었다. 냉엄한 투자세계에서 한평생을 보낸 버핏이지만 투자책임자에게 승부사 같은 기질이나 도전정신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그가 꼽은 필수 조건은 독립적인 사고, 감정적 안정성, 인간과 기관의 투자 행태에 대한 이해였다. 끝으로 그는 ‘더 좋은 대우를 해 준다는 외부 제안에도 회사를 떠나지 않을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이런 사람은 꽤 있지만 알아보기 힘들다는 말도 그는 덧붙였다.

버핏의 후계자론은 최근 인터넷 매체와의 합동인터뷰에서 “정치를 좀 아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차기 대통령의 조건을 정식으로 밝힌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니 경제니 하는 분류부터 현실적이지 않다.

노 대통령이 버핏처럼 자신의 경험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녹아 있는 리더십의 조건, 리더의 덕목을 정리해 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짤막한 대답이었지만 거기서 4년간의 국정 운영의 경륜을 찾기도 어렵고 현재의 대권 주자를 겨냥한 말처럼 해석돼 씁쓸하다. 자신이 ‘역사적 결단’으로 창당했다는 열린우리당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그냥 해 본 소리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임기가 1년도 채 안 남았지만 노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서는 국민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도 있다. 그동안 국정 운영 과정에서의 이런저런 잘못을 수험생의 오답(誤答)노트처럼 정리해 차기 대통령의 조건으로 꼽아보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대통령이 고심 끝에 설정한 대연정, 양극화 해소, 개헌 같은 국정 어젠다가 왜 국민에게 먹히지 않았는지, 균형 발전, 복지 확충, 정부혁신사업 등은 왜 정권 안팎에서 평가가 전혀 다른지를 차기 대통령을 뽑을 국민에게 설명해 준다면 그 자체로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버핏식의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에서도 배워야 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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