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모두가 승자인 사회

  • 입력 200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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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승자(winner)였다. 어디에도 등수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발레 유망주들인 박세은, 김채리 양이 1, 3위를 차지한 대회로 국내 언론에 떠들썩하게 소개된 2007년 로잔콩쿠르. 대회 인터넷 홈페이지의 수상자 명단을 보니 등수란은 아예 없다. 한국인 두 명을 포함해 장학금을 받는 6명은 ‘수상자들’이라는 제목 아래 차례로 이름이 올라 있다. 다만 점수순으로 박 양이 첫 번째, 김 양은 세 번째로 나와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등수를 매기지 않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라는 게 콩쿠르 사무국의 공보담당자 카트린 씨의 설명이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주니어 무용수(15∼18세)를 북돋아 주기 위한 대회이지, 학생들을 치열하게 경쟁시켜 서열을 나누는 과거시험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박 양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최 측에 따르면 이 대회에는 1등이나 금상은 없으며 여섯 명의 승자가 있을 뿐이다. 동등한 자격이므로 장학금도 똑같고, 수상 혜택도 각자 원하는 발레단에서 연수를 하도록 해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는다.

국내의 한 무용계 인사도 이런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프로들은 어쩔 수 없이 등수를 매길 수도 있지만 사실 중고등학생 또래에게는 등수가 별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줄 세우기야말로 다른 수상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요.” 이 말을 들으며 해당 기사의 에디터로서 부끄러웠다. 1등에 집착한 것도 그렇고, 한국 입상자 두 명마저 등수에 따라 차등을 둔 것도 반성했다.

산업화란 목표 아래 미성숙의 시대를 거쳐 온 우리 사회. 이제는 배움의 현장에 던져진 나이 어린 국민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필요한 때다. 각각의 재능과 특성이 다른데도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에 맞춰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세우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 2월은 졸업 시즌이지만 학업을 무사히 마친 모든 학생을 두루 격려해 주는 졸업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군사문화보다 더 살벌한 경쟁체제를 만들고 이를 방치하면서, 각자 조기유학이나 이민이라는 도피처를 찾아 애써 번 돈을 나라 밖으로 다 내보낸다.

결과에만 목을 매다 보니 정작 중요한 걸 놓쳐 버리는 일은 교육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대선에 나선 후보들도 그렇다. 넓게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건 간에, 나름대로 특장이 있는 이들 모두를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인적 자산’으로 아우르는 것이 대한민국에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럼에도 같은 당에서조차 틈만 나면 동업자 흠집 내는 데 온 신경을 쏟는 모습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국민에게조차 일찌감치 ‘대선 피로감’을 증폭시킨다. 어렵사리 대선 주자에 언급되는 위치에 오른 이들임에도 ‘1등’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같은 신세가 된다면 사회적 낭비가 너무 크지 않은가.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바람직한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 예전에 일본의 지방 경마장에는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늙은 경주마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적이 있다. ‘113전 전패’로 경기장을 떠난 이 말이 관중을 열광케 한 것은 날쌘 경주마들 틈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달리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1등과 꼴찌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는 세상까지 가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성숙해야 할까.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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