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바그다드 카페

  • 입력 2007년 2월 15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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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버림받은 백인 여성 야스민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근처 황량한 사막 마을에 나타난다. 뚱뚱한 몸매, 검은색 정장에 질질 끌리는 큰 옷가방이 답답하고 처량하다. 마을이라 해야 흑인 여성 브렌다가 운영하는 카페와 모텔, 주유소가 전부. 카페로 들어서자 신경질에 찌든 브렌다가 맞이한다. 야스민은 모텔에 투숙한다. 브렌다는 카페 구석에서 피아노에 미쳐 있는 아들, 이어폰을 꽂고 남자친구를 따라다니며 놀기만 하는 딸, 무능한 남편과의 삶에 지쳐 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속의 상황이다. 수많은 트럭과 여행객이 오가지만 아무도 이들의 일상엔 관심이 없다. 커피제조기가 고장 나도 고칠 생각을 않는 ‘바그다드 카페’ 역시 손님에게 무관심하다.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주제곡 ‘콜링 유(calling you)’의 애끓는 호소가 영화 내내 흐른다. 어느 날 야스민이 카페를 대청소하고 브렌다 자녀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마을은 웃음을 되찾아 간다. 카페 가족을 위한 그의 아마추어 마술은 입소문을 타고 이곳을 ‘마술의 명소’로 바꾼다.

▷국내의 한 젊은 여성판사(37)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소년범 재판에 적용해 성과를 봤다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그는 삶을 힘겨워한 어머니, 친척집을 떠돈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따뜻한 관심만으로도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경력 10년도 안된 그의 이른(?) 깨달음은 판관(判官)으로서 큰 재산이다. 법원 소식지 ‘법원 사람들’에 올린 글로 문예대상을 받게 된 영예보다도 훨씬 소중한 것이다.

▷판결은 마음을 울려야 신뢰와 권위가 선다. 피고인을 윽박지르고 검사 변호사 위에 군림하려 해서 얻는 게 아니다. 재판할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피고인 증인 등의 진술을 ‘예’ ‘아니요’로 제한해서도 안 된다. 재판 당사자들은 판사가 자신의 말을 관심 깊게 들어 주기만 해도 판결에 승복하고 고마워하는 경우가 많다. 사법부의 공판중심주의도 ‘진실 발견’에 ‘관심 기울이기’를 곁들일 때 그 뜻이 빛날 것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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