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오래오래 산 괴테

  • 입력 2007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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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을 다룬 소설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찾기 어렵다. 괴테는 친구와 자신의 실연 경험을 토대로 완성한 이 소설로 약관 25세에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됐다. 하지만 시대와의 불화와 이룰 수 없는 연정으로 고민하던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장면은 수많은 모방 자살을 낳았다. 결국 이 책은 유럽 일부 지역에서 발간이 중단되기도 했다.

▷소설 속 젊은 베르테르는 자살을 선택했지만 괴테 자신은 83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인생과 우주, 정치와 여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열정을 품고 잘살다 갔다. 두 번의 결혼생활을 빼고도 많은 여성과 연애를 즐기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괴테와 친하게 지냈던 독일의 대표적 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평생 삶과 여자를 저주하고 살았지만 콜레라가 무서워 프랑크푸르트암마인으로 도망가듯 이주한 뒤 그곳에 눌러 살았다. 당시로선 짧지도 않은 72세까지.

▷‘베르테르효과’라는 말은 유명 인사가 자살할 경우 동조 자살이 늘어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재작년 2월 영화배우 이은주 씨가 자살한 뒤 국내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청이 집계한 그해 2월 자살자는 738명이었으나 이 씨의 죽음이 집중적으로 보도된 뒤인 3월의 자살자는 1313명으로 전달의 1.78배였다는 얘기다. 가수 유니에 이은 탤런트 정다빈 씨의 자살로 다시금 베르테르효과라는 말이 떠올랐다.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모방심리까지 강하다 보니 동조 자살이 기우(杞憂)만은 아닐지 모른다.

▷‘자살은 사회적 살인’이란 말이 있다. 자살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한 우리나라에 던지는 말 같다. 지난주 한 재판에서 판사는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쳐 보라고 했다. 거꾸로 읽으면 ‘살자’임을 일러주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모방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자살마저도 모방한다면 서글프지 않은가. 20대에 살 만큼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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