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마카오의 해바라기

  • 입력 2007년 2월 5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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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마카오 체류를 보도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지를 본 것은 1일 홍콩의 한 호텔에서였다. 국제 금융과 교역의 중심지인 홍콩의 이런저런 현장을 며칠 둘러보고 귀국 짐을 꾸리다 방에 배달된 신문에 눈길이 갔다. 짧은 머리에 짙은 갈색 선글라스를 끼고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비만한 남자의 사진이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기 때문이다.

누구지? 홍콩 갱 영화의 배우인가? 궁금증은 ‘김정일의 아들이 마카오를 그의 집으로 삼다’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서야 풀렸다. 아, 그렇구나!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김정남이 마카오에서 3년간 거주해 왔다는 보도는 흥미로우면서도 심란했다. 그는 왜 그곳에 머물러 온 것일까. 미국의 금융 제재로 2400만 달러의 북한 계좌가 동결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소재지 아닌가. 정말 카지노와 룸살롱, 사우나를 드나들고 명품을 쇼핑하는 것만으로 세월을 보냈을까. 작년 4월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된 대만인 정모(69) 씨는 김정남에게서 e메일을 통해 수시로 지시를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김정남이 사는 마카오의 고급 빌라엔 태양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문양(紋樣)이 창문에 부착돼 있다고 한다. 북한이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들었던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자신도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후계자 낙점과 관련해 ‘현재의 태양’인 김 국방위원장을 해바라기처럼 쳐다보고 있다는 뜻인지….

어쨌거나 그는 중국의 대표적인 개방지역으로 마카오에서 가까운 선전(深(수,천)) 등의 비약적인 발전상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 국방위원장도 지난해 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광저우(廣州), 주하이(珠海), 선전 등 개혁 개방의 현장을 찾지 않았던가.

김정남이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홍콩은 또 어떤가.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백만 불짜리 야경(夜景)’의 일부분을 이루고, 고급 쇼핑몰에선 ‘메이드 인 코리아’ 전자제품 등이 세계의 명품과 어깨를 겨루는 곳이다. 거리의 명물인 트램(2층 전차) 중에는 한국 상품의 광고를 달고 있는 것도 쉽게 눈에 띈다.

김정남은 북한의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관측도 있지만 속단하기는 이르다. 김 위원장이 그를 완전히 ‘내친 자식’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면 부자간에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주고받을 기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중국의 상전벽해(桑田碧海)에 대해, 또 남북한의 국력 격차에 대해 어떤 얘기를 나눌까.

물론 한국의 국제경쟁력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지난해 국내 은행에서 홍콩의 금융가로 스카우트된 한 금융인은 “한국이 홍콩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북한이야 오죽하겠는가.

김정일 부자는 국제사회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자신들만 호의호식하는 것은 민족에 대한 범죄다. 굶주린 주민에게 ‘민족의 태양’이나 ‘해바라기’와 같은 상징 조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참혹한 인권 유린도 모자라 기이한 사치 행각으로 국제사회의 조롱을 받는 북한 지도부의 행태가 답답하기만 하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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