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국인 포용 없이 선진국 못 된다

  • 입력 2007년 1월 29일 2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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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포함해 수도권에 사는 외국인 열 명 중 네 명이 “코리아에선 내 돈 내고 무얼 사기도 힘들다”고 불만을 터뜨린다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직장 유학 이민 등의 이유로 석 달 이상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수시로 바가지를 쓰고, 월세도 내국인보다 많이 낸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고 예금까지 담보로 맡겨야 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실태 조사에서 드러난 우리의 자화상(自畵像)은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 지경이다.

시식코너에서 맛을 보고 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먹었으면 사야지 왜 그냥 가느냐”며 윽박지르는 일도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저임금 근로자들의 임금을 수천만 원씩 체불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의사소통이 서툴고 국내 실정에 어둡다는 이유로 바가지요금에 강매까지 서슴지 않는 행태는 상도의(商道義)에도 어긋나지만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국내에 90일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53만6000여 명으로 2000년에 비해 3.6배가 늘었다. 관광이나 업무를 위해 짧은 기간 방문하는 외국인과 국제결혼 인구까지 따지면 ‘100만 외국인 시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과 상품,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시대에 외국인을 차별하고 홀대하는 문화로는 동북아 경제중심은커녕 ‘외국인이 살고 싶은 도시’도 되기 힘들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에 경제 규모 세계 12위의 나라로서 그에 어울리는 국격(國格)을 갖춰야 한다.

산업자원부는 2003년 ‘외국인 생활환경 개선 5개년 계획’을 세우고 6개 분야 40개 과제 100개 세부 과제를 내놓은 바 있다. 이번에 불만사항으로 지적된 신용카드 발급 불편이나 월세 바가지는 2004년에 벌써 해결됐어야 했다. ‘100개 세부 과제’를 꿰맞춘 것은 그럴듯하지만 실제에서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탁상행정이다.

단일민족이라는 폐쇄적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은 나라 발전에 장애가 되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외국인이 살기 좋은 환경이 곧 일하고 투자하기 좋은 환경이다. 외국인에 대한 사람대접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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