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수]‘낙하산’이 부른 공기업 모럴해저드

  • 입력 2007년 1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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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화낼 기력조차 잃은 국민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한국 공기업의 총부채는 2005년 말 기준으로 122조 원에 이른다. 중앙정부 일반회계 예산과 맞먹는 천문학적 규모다. 모두가 국민의 빚이다. 그런데 공기업 사장 가운데는 7억112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억8540만 원의 연봉을 받는 감사가 있다. 정부 통계만 보더라도 공기업 직원은 대기업 평균 연봉의 최고 1.7배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등급이 최하위인 11등급의 평가를 받은 직원에게 성과급을 330%나 지급하고 처외조모상(喪)에까지 위로금 200만 원을 지급하는 등 각종 명목의 복지후생비를 지급한다는 보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1년의 절반 가까운 140여 일의 공식 휴가에 더하여 성희롱휴가, 입양휴가, 창립기념일 대체휴가 등 각종 이름의 목적휴가를 더 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빚덩어리 공기업에서 노사가 한통속이 되어 이와 같이 놀자판 잔치를 벌이는 모습은 파렴치와 다름없다.

공기업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경영평가가 이뤄지고 버젓한 감독기관이 있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그것을 감독해야 할 공적 책무가 있는 정치권력과 관료, 그리고 노조가 경쟁적으로 서로의 몫을 다투는 주인 잃은 먹잇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공기업 경영 난맥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관례화된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된다. 경영평가를 아무리 정교하게 한들 권력이 낙하산 인사로 응답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낙하산으로 약점 잡힌 기관장이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어떻게 소신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또 공기업 운영을 직접적으로 감독해야 할 관료는 권력의 눈치를 살피면서, 감독권 행사에 따르는 부스러기 먹이에 안주하는 경향이 체질화된 것이 사실이다.

공기업 경영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낙하산 인사가 근절돼야 한다. 정부는 4월부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공기업 인사가 정상화될 것으로 낙관한다. 제도를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권력이 편법으로 대응한다면 하루아침에 ‘종이 제도(paper institution)’로 전락해 버리는 현상을 우리는 적지 않게 경험했다.

마침 주요 공기업 사장과 감사를 합한 62명 가운데 22명(35.5%)이 연내에 교체된다. 주요 인사 때마다 코드 인사, 보은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근절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공기업의 비상임이사 구성에 공익대표의 참여를 확대하고 그들의 실질적 견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또 공식적 감독권을 행사하는 관료에 대해서 엄격한 감독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공노조는 이제 공익을 지향한다는 ‘논리적 겉치레(veneer of logic)’를 내세워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여하고 조그만 사적 이익을 끝없이 추구하기보다는 공기업 경영 정상화를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국민 처지에서는 결국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 정상화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종수 한성대 교수·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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