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정신분열증의 세계

  • 입력 2007년 1월 23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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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에 이어 근현대사 제3부작 ‘제국의 시대’를 쓰면서 ‘자본주의적 정신분열증’을 질타했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패권을 위해 보호주의와 팽창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정신분열적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옛 소련을 여행하면서 공산주의에 절망하기도 했던 노학자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내려놓지 말자.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1971년 다보스포럼을 창립한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24일 포럼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올해는 점점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힘과 부(富), 그리고 삶의 질은 분명히 좋아졌지만 세계가 점점 더 이해하기 힘들고 심지어 ‘낯선’ 곳처럼 변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힘들여 만든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소외돼 간다는 얘기다. 자본주의적 풍요 속에 숨어 있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보면서 그는 홉스봄의 말을 떠올린 것일까.

▷다보스포럼은 포럼에 참가한 세계 각 분야의 지도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경제적 실재(實在)’와 의식의 분열상을 지적했다. 응답자의 65%는 다음 세대가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똑같은 수가 “경제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녀들이 지금보다 훨씬 안전(safe)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보스포럼 관계자는 “수년간 세계경제는 기록적으로 성장했지만 많은 사람이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며 혼란스러워한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포럼은 올해의 주제를 ‘힘의 이동 방정식’으로 명명하고 참석자들에게 수학의 방정식을 풀듯 세계화 시대의 정신분열증을 치료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울까. 올해 다보스포럼의 방정식은 쉽게 풀리기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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