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동규]UCC선거 이젠 현실이다

  • 입력 2007년 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초반에 민주당의 경선주자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주목을 받았던 사람은 하워드 딘이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쟁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한때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다.

다른 후보와 비교해 하워드 딘의 독특한 선거운동 방법은 인터넷이었다. 그는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해 대선자금을 모금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지자를 하나로 묶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하워드 딘의 캠프는 2년 전 한국의 대선을 주목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선거운동 방법을 주도했던 미국에서 ‘노사모’를 포함한 한국형 인터넷 선거 전략을 분석하고 응용했던 것이다.

무조건 금지보다 위반 사례 적시

지난 16대 대선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 것은 분명하다. 투표 하루 전날 정몽준 씨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선언으로 모든 상황이 예측 불허로 돌변했는데, 진보적 성향의 인터넷 언론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한 젊은 층 사이의 투표 독려가 노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일등공신이었으니 미국의 후보가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인터넷과 휴대전화는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처럼 대규모 집회나 불법적인 선거운동이 발붙일 수 없는 풍토가 정착됐기 때문에 이들 매체를 활용한 선거운동의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특히 주목을 받는 대상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일반인이 직접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는 손수제작물(UCC·User Created Contents)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 때 여러 지역에서 당락에 영향을 미칠 만큼 UCC는 새로운 사회적 소통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요즘 인터넷에선 유력한 대선 후보와 관련된 UCC가 인기를 끌고 있다. 급기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운영자에게 이들 UCC의 삭제를 요구했다. 또 미성년자의 선거 관련 UCC 제작 및 게시를 금지하고 성인의 경우도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만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UCC는 선거 분위기가 가열될수록 뜨거운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에 대해 미리 원칙을 밝힌 중앙선관위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누군가가 UCC의 내용을 악의적으로 조작하고, 소위 네거티브 선거 전략으로 이용한다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 사이에 소통의 장으로 자리 잡은 인터넷 공간을 막으려는 섣부른 시도를 하다가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으므로 신중히 해야 한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올해의 인물로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You’라고 적힌 컴퓨터 화면을 선정할 정도로 누리꾼은 블로그나 UCC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 구조 속에서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는 상황인데, UCC의 유통을 막겠다는 건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다.

누리꾼 절제된 참여 유도해야

이미 인터넷의 다른 공간을 이용해 유력 후보자 간의 상호 비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많은 함의를 갖는 UCC만 규제하려고 든다면 웃음거리만 될 뿐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오히려 이번 대선을 건전한 선거 문화를 공고히 하는 계기로 삼으려면 UCC 게시를 무조건 금지하지 말고 선거법에 저촉되는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누리꾼의 절제된 참여를 이끄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그런 의미에서 누리꾼 역시 이번 선거 기간을 좀 더 성숙하고 자율적인 인터넷 문화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어느 연예인의 자살을 놓고 누리꾼의 ‘악플’에 의한 타살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이 나올 정도로, 인터넷에서의 무책임한 행위는 부메랑이 되어 누리꾼 스스로를 옭아맬 수 있다.

성동규 중앙대 교수·신문방송학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