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번지 없는 한국가요계 주소찾기…‘번지 없는 주막

  • 입력 2007년 1월 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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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 없는 주막/이동순 지음/528쪽·2만5000원·선

‘가거라 삼팔선’에 대한 기억을 물어본다면 두 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나는 가수 남인수의 히트곡으로, 또 하나는 노래방책 ‘ㄱ’으로 시작되는 맨 앞장 상단에 있는 곡으로.

어떤 기억을 떠올리든 ‘가거라 삼팔선’은 광복 이후인 1946년 발표돼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애창곡으로 자리매김했다. 1962년 남인수가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가요계 최초로 연예협회장이 치러질 정도였으니 그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워낙 여복이 많아 ‘여(女)인수’라 불렸고 재테크에도 밝아 ‘돈인수’라는 별명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추억’ 등 목포 전문 가수 이난영은 특유의 슬픈 ‘콧소리’로 70년 넘게 사랑을 받은 여가수. 하지만 그 콧소리만큼 슬픈 삶을 살다 갔다. 인기 작곡가 김해송과 22세에 결혼해 8명의 자녀를 출산했지만 6·25전쟁으로 남편과 자녀를 잃었다. 그 후 남인수와 염문설을 뿌렸지만 비극적으로 끝났다.

저자는 이처럼 남인수, 백년설, 이난영, 이미자 등 광복 전후 서민들의 벗이 돼 주었던 가수들은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어떤 비화를 갖고 있는지를 사실과 사견을 섞어 책에 담았다.

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음악을 통해 시대상을 담으려 했다. ‘울리는 만주선’(남인수) ‘국경열차’(송달협) 등을 통해 나타난 그 시절 기차 이야기를 비롯해 항구, 만주, 베트남 등은 그 시절 가요계가 현재와 달리 얼마나 소박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 처음 본 축음기의 기억, 김지하 시인과 벌였던 노래 경연 등 저자가 겪은 에피소드까지 실려 있다.

저자는 백년설의 노래 제목 ‘번지 없는 주막’을 책 제목으로 뽑았다. 비, 보아, 세븐 등 한류 스타들의 인기가 아시아에서 확산되며 양적 성장을 이뤄 온 한국 가요계.

그러나 저자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영남대 국문과 이동순 교수는 “국내 가요가 문화적 주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라는 뿌리 없이 오늘 우리 문화의 혼은 형성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 가요계에 확실한 번지를 되찾아 주고자 20년 넘게 연구해 온 바를 책으로 펴낸 그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그럼에도 “교수가 한국 가요사에 대한 책을?”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가 있을 것 같아 책 맨 앞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노래는 기쁨이며 사랑이다. 내가 얼마나 가요를 사랑했는지….”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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