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군(軍)에 간 아들에게

  • 입력 2006년 12월 27일 20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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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다음 날.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하기 위해 박박 깎은 머리를 매만지며 집을 나서는 스물한 살의 너를 전송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엄마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직접 차를 몰아 집결지인 논산까지 바래다주고 싶어 했지만 너는 부모의 동행이 되레 부담스러웠던 듯 여동생과 함께 고속버스 편으로 내려갔다.

한겨울에 자식 軍에 보낸 부모 심정

솔직히 아비는 당초부터 너를 데려다 줄 생각이 없었다. 훈련소로 향하는 네 뒷모습을 보면서 분명 눈시울을 적시게 될 내 연약함이 걱정스러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네 엄마가 수시로 낼 훌쩍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또 입대를 한 달여 앞두고 이따금씩 “이제 내 청춘은 끝났다”며 심란해 하는 너를 보면서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네가 마음에 걸려 집과 직장 근처 교회에서 매일 기도를 하곤 했다.

너 역시 군 복무 기간 단축과 같은 ‘선심성 대선 공약’들이 매스컴을 장식할 때 입대하게 돼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자진 입대한 젊은이들에게 긍지를 심어 주고, 엄동설한에 자식을 군대에 보낸 뒤 밤새 뒤척이는 부모의 마음도 헤아려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정말 안타깝다. 아비는 네가 이런저런 헛소리에 흔들림 없이 일단 24개월 만기복무를 마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과 복무에 임해 주기를 바란다.

공직자는 아니지만 보충역으로 군에 다녀온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아비는 아들이 반드시 장교나 현역병으로 군에 가는 걸 보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인은 준(準)공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온 이 아비는 네가 편법으로 군 복무를 기피하거나 단축하려 들지 않고 당당히 현역병으로 입영한 것을 정말 고맙게 여긴단다.

이른바 ‘햇볕정책’이란 것이 시작될 때부터 아비는 평화공존과 남북화해도 좋지만 국가 지도자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청춘을 2년 넘게 병영에서 보내며 땡볕과 혹한 속에서 매복 또는 보초를 서는 데 대한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자신이 군 복무를 함으로써 우리 경제가 발전하고, 가족이 발 뻗고 잘 수 있으며, 사회가 군 제대자를 우대해 준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병사들이 졸음과 추위를 참아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훈련을 마친 후 어느 곳에 배치될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염두에 두지 마라.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임지나 보직에서도 의외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최전방 골짜기엘 가더라도 훌륭한 상관과 좋은 전우들을 만나면 가족 못잖은 전우애를 느끼며 보람차게 지낼 수 있는 것이 군 생활이다.

더구나 너는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영화학도니만치 군대에서 많은 작품의 소재를 발굴해 내고, 다양한 유형의 캐릭터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간의 본성과 집단생활에 대한 ‘딥 포커스(Deep Focus)’적인 관찰로 영화적 깊이와 넓이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비가 아는 사람 중에는 공부에 도통 관심이 없던 아들이 제대 후 뒤늦게 학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면학에 나서 영국 대학으로 유학 간 사례를 말하면서 “국방부 앞에 가서 절이라도 하고 싶다”며 고마워하는 이도 있다.

‘썩지 않고’ 성숙해져 돌아와라

네가 훈련소에 입소한 지 꼭 사흘째로구나. 무척 힘든 때일 것이다. 하지만 네 말마따나 그동안 몇몇 영화 촬영 현장의 말단 스태프로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힘든 훈련도 능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네 건강과 안위를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라.

아비가 이 순간 네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오직 이 한마디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래야만 결코 ‘썩지 않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군 복무를 마치게 될 것이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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