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외환은행의 빛바랜 수출 공로패

  • 입력 2006년 12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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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세계에서 11번째로 연간 수출액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소식을 듣고 헐값(불법) 매각 의혹으로 시끄러운 외환은행이 떠올랐다. 기여도로 치자면 외환은행도 기념식장에서 공로패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은행이 걸어온 궤적이 초기 한국 수출의 역사다.

‘한국은행의 갈비뼈를 떼어 내 만든 은행.’ 외환은행 직원들은 자조적으로 이런 말을 주고받곤 한다. 1967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수출금융 기능을 분리해 자본금 100억 원으로 출발한 데서 연유한 표현이다.

은행원의 깔끔한 모범생 이미지답게 외환은행은 설립 목적에 충실했다.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에 호응해 기업들의 수출에 필요한 자금을 댔다. 깐깐하게 주판알을 튕기기보다는 ‘수출 입국(立國)’이라는 국가시책의 가치를 중시했다.

해외여행의 기회조차 흔치 않던 시절,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젊은 엘리트들이 외환은행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해외 곳곳에 포진한 영업점에서 현지의 시장 정보를 취합해 본국에 보고하는 척후병 역할도 했다.

중동 건설 붐에도 외환은행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당시 중동 국가들은 공사 입찰을 부치면서 한 나라에 한 곳의 금융기관만 인정했다. 사막에서 오일달러를 벌어들인 건설사의 깃발 옆에는 늘 외환은행의 간판이 함께했다.

외환은행 임직원들이 한국 수출의 개가를 지켜보는 심사는 그래서 복잡하다. 수도권의 한 본부장은 “대기업 영업에 주력한 탓에 민영화(1989년)가 된 뒤에도 고객층을 개인으로 넓히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창립 이래 줄곧 기업과 운명을 같이한 수익구조를 바꾸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관치 금융의 서슬이 퍼런 때라 경영진은 관(官)의 부당한 압력에도 취약했다.

하긴 외환은행만 딱한 건 아니다. 기업금융을 통해 수출 증대에 기여한 은행들은 외환위기로 한국의 산업 기반이 위축되면서 간판을 바꿔 달거나 다른 은행에 흡수 합병됐다. 상업, 한일, 조흥, 제일은행의 퇴장은 세계 10대 무역대국에 공헌한 한국 기업금융 1세대의 몰락이다.

외환은행은 올해 약 2조 원의 이익을 낸다고 한다. 은행의 발목을 잡았던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의 실적이 개선된 효과가 크다. 불과 3년 전 거액을 베팅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선견지명’이 놀랍고, 우리의 짧은 안목이 부끄럽다. 론스타는 최대 1조30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배당금을 챙길 수 있게 됐다.

검찰은 7일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한국의 관료 집단은 판세를 읽는 눈에서 패배한 식견의 부족에 도덕성까지 의심받게 됐다. 누구보다 정부의 지시에 순종했던 은행을 관이 헐값에, 그것도 불법으로 팔아 치웠다는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다.

외환은행의 운명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론스타 지분의 처리 방향을 놓고 앞으로도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질 것이다. 알토란 같은 배당금을 내주고, 불법 매각의 전모를 되씹는 것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하지만 아무리 속이 쓰려도 외환은행에서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해외 매각과 외국자본 유치에서 더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서도 외환은행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보듬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외환은행은 지금까지 해낸 것만큼이나 앞으로 할 일도 많다.

박원재 특집팀 차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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