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종섭]내년 대선 경기 규칙 미리 짜야

  • 입력 2006년 12월 6일 03시 01분


코멘트
차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있다. 배신과 눈속임이 벌써부터 횡행하고 권력의 행각이 점점 추잡해져 가고 있다. 우리 정치판에 대고 원칙이니 격조니 하는 말을 하면 현실을 한참이나 모르는 책상물림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지만, 내년 대선까지 시간이 아직 남아 있으니 경기하기 전에 경기 규칙에 관해 몇 가지를 미리 정리했으면 한다.

#규칙 ①: 선거 후보자의 당내 경선 불복 문제. 과거 정치권에서는 당내 경선에 출마한 후 결과에 불복한 선례가 있어 이에 대해선 정치적인 평가가 분분하다. 그러한 여파에서인지 몰라도 공직선거법은 당내 경선 참여자가 후보자로 선출되지 못하면 당해 선거구에서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국회의원 선거에선 동일한 선거구에 출마하지 못하고,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대선 후보로 나설 사람에 따라 이불리(利不利)의 계산이 다를지 모르겠으나, 헌법적으로는 위헌이므로 대선 도중에 헌법재판소로 가서 선거판을 통째로 뒤흔드는 싸움은 하지 말고 미리 폐지하는 것이 옳다. 이는 경기 규칙 문제이기 때문에 경기 시작 전에 분명히 해야 한다.

정당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정치사회의 자율적인 정치단체이므로 정당의 자율적 경선에 불복할 경우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국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스스로 정할 문제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유권자 몫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특히 유권자가 원하는 사람을 정당이 미리 가로막고 정당이 추천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투표하게 하는 것은 국민주권은 물론 국민의 선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다른 정당으로 가든 무소속으로 출마하든,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이지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경선에 불복한 정치인이라도 국민이 원하면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출마할 수 있어야 한다. 당내 경선에 불복한 정치인에 대해선 국민이 심판하는 것이지 법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정당 공천제를 법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내 경선에 불복하는 자에게는 그 정당의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다.

#규칙 ②: 당내 후보자 결정 방법. 어떤 정당이 선거에서 자기 당 후보자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는 불법이 아닌 한 스스로 정한다. 정당 후보자 결정 방식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 자유의 핵심 내용으로 이를 국가가 강제하는 것은 정당 활동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후보자 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하든, 경선 또는 추첨을 통해 결정하든 정당의 자유다. 위원회나 경선에 당원만 참여할 것인지 외부인도 참여시킬 것인지 여부, 경선 절차와 운동 방법, 참여인 비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은 모두 정당의 자율 영역이고 민주주의 영역이다.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오픈 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의 채택 여부도 정당의 자유이며, 이를 법으로 강제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다.

#규칙 ③: 선거 무효의 사유.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관한 규정에 위반된 사실이 있는 경우 법원이 이런 위반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할 때 선거의 전부 또는 일부 무효를 판결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가는 법률에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우리 현대사에서 보듯이, 선거판에서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대 흑색선전, 중상모략, 거짓 폭로, 허위 사실 유포 등의 수법은 변함이 없었고 최근에도 ‘병풍’이니 ‘북풍’이니 하는 대형 조작, 선전 공작이 기승을 부렸다.

이는 선거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나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진 뒤에는 유야무야됐다. 총대를 메고 희생타를 친 사람은 형사책임을 뒤집어쓰는 대신 뒷거래로 보상을 받는, 실로 추잡한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고 그에 대해 죄의식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경기에서 반칙을 하는 전형적인 것이기에 무효로 처리돼야 한다. 선거에서 반칙을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말살이고 법치주의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가 되려면 지금이라도 정치권이 선거무효 사유를 합의하여 공직선거법에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고, 이것으로는 한국 선거판의 추잡성과 불법성을 추방할 수 없다.

정종섭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교수 jschong@snu.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