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KTX에서 만나는 스승과 제자

  • 입력 2006년 11월 2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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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최대의 폭력 시위로 얼룩진 22일 서울로 향하는 고속철도(KTX)는 연가투쟁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하는 지방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로 붐볐다. 전교조는 이날 집회 참석자가 7203명이라고 밝혔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2727명이라고 집계했다. 대다수가 학교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결근하거나 조퇴한 교사다. 이들 참가자의 64%인 1740명이 KTX나 버스 등을 타고 상경한 교사다. 주최 측이 집회 시간을 오후 2시로 잡은 것도 지방에서 올라오거나 조퇴하는 교사들을 배려한 때문이리라.

같은 날 일군의 고교 3학년생이 다른 이유로 KTX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강남과 목동의 논술학원에서 논술고사 준비를 하려는 학생들이다. 학교에서 논술 준비를 기대할 수 없고, 서울처럼 풍부한 사교육 인프라도 없어 지방학생들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원을 찾아 상경하는 것이다. 학교에는 체험학습을 하겠다는 핑계를 대지만, 사정을 뻔히 아는 학교에서도 말릴 도리가 없다고 한다. 학원 논술 교육이 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학원에 다닐 기회조차 없는 이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논술 공부를 위해 학교를 등지는 학생이라니, 해외 토픽감이 따로 없다.

이날 교사와 학생이 ‘진짜로’ 조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제각각의 이유로 서울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이 무너진 교육 현장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정작 당황스러운 것은 연가투쟁에서 터진 교육대생들의 목소리였다. 집회를 지원하러 나온 전국교육대학생협의회 측은 “‘조중동’과 교육부가 학생 학교 교원평가를 강행하려는 것은 800만 초중고교생을 끝도 없고 생산성도 없는 낭비적인 석차순위 경쟁을 통해 어려서부터 계급화 서열화해 자살로 내몰려는 살의 모의”라고 주장했다. 대학생이긴 해도 예비교사들인데 교원평가제를 살의 모의로 연결하는 비약과 단순함에 기가 질린다. 그럼 교원평가제를 지지하는 많은 학부모는 자녀를 죽이려는 살인 공범이 되는 건가.

전교조와 교대생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교원평가제는 이름만 그럴싸할 뿐 내용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평가 주기는 3년이며, 인사나 성과급 지급 등 인사 자료로는 활용되지도 않는다. 평가 결과를 재임용과 연계해 부적격교사를 바로 퇴출시키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렇게 평가를 겁내는 교사들이니 애당초 학교에서 논술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닌가 싶다. 알찬 논술 교육을 제공해 학원이 필요 없도록 만드는 것이 교사의 본분인데 전교조는 본고사형 논술시험에 반대한다며 농성부터 했다.

우리 논술시험은 불안정한 입시제도 때문에 생겨났지만 논술은 세계적 추세이다. 어찌 보면 논술 교육이야말로 학교가 학원을 누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수백 명의 학생을 강의실에 몰아넣고 제공하는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학생을 제대로 이해하는 교사들만이 지도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통합 교과형 논술일수록 각 과목 교사들의 준비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른바 논술 명문고를 보면 신문을 활용한 읽기지도와 토론학습, 첨삭지도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교사들이 어김없이 존재한다.

평가 반대 시위를 위해 학교를 저버린 선생님들, 평가를 잘 받으려고 낯선 서울 거리를 헤매는 학생들. 2006년 11월 서울의 딱한 풍경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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