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부동산 대책 열 번도 모자라나

  • 입력 2006년 11월 20일 03시 04분


코멘트
이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몇 번이나 나왔는지 헷갈린다. 작은 대책까지 세면 20번이 넘고 굵직한 것만 추려도 8, 9번이나 된다고 한다. 1년에 두 번씩은 족히 발표된 셈이다. 제대로 된 대책을 제때 시행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이다.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겠다’고 장담한 뒤 불과 몇 년 사이에 두 배로 오른 곳도 있으니 ‘부동산 공황’, ‘부동산 민란’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집 마련 미룬 무주택자 박탈감

그런데도 이 정부는 부동산 정책 기조가 바뀐 것이 없다고 우기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11·15대책’의 골자는 주택 담보 대출 규제와 아파트 공급 확대, 분양가 인하 등이다. ‘세금폭탄’의 효과를 맹신했던 과거 대책과는 꽤나 달라졌으나 정부의 ‘거짓말’을 믿고 집 마련을 미룬 사람들의 박탈감을 치유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

이번 대책의 한계는 무엇보다 과거의 잘못된 대책을 바로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밑그림을 잘못 그려 놓으면 아무리 덧칠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세금폭탄’이다. 세금폭탄의 ‘위력’은 명백하게 드러났고 검증도 끝났다. 특히 양도세는 집값을 올려 그 부담을 전가시킨다.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 거래를 막고 불경기가 장기화되도록 한 것은 세금폭탄의 오발 탓이다. 한시적으로 양도세를 완화해 매물이 나오게 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정치적인 계산을 초월해 검토해 봐야 한다. 이런 식의 세금폭탄을 계속 놔둔다면 엄청난 후유증이 우려될 뿐이다.

신도시 건설 확대도 공급을 늘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정작 수요가 많은 서울 도심의 재건축 재개발은 여전히 억제한다는 데에 한계가 있다. 수요가 있는 곳에는 못 짓게 하면서 불확실한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부작용만 초래한다. 게다가 불과 1, 2년 만에 신도시 정책이 바뀌는 판이니 과연 그 신도시가 제대로 건설될지 의문이고, 교통 교육 등 인프라 대책이 허술하니 입주자의 불편이 걱정이다. 급조된 신도시 건설계획 확대 방안도 다시 손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주택 대출 규제조치는 적절한 시점을 놓쳤다. 6월 본란을 통해 주택 대출의 급증을 경고한 바 있다. 작년에 내놓은 주택 대출 규제 방안이 ‘효력 무효’일 때 금융감독원은 선제조치를 취했어야 옳았다. 게으른 탓인지, 아니면 금융 관료들의 ‘몸보신’ 때문인지 당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지금의 혼란을 자초했다.

누구 탓이든 주택 대출이 급증하고 있으니 비상조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나 국민의 주거문제가 걸린 비상상황이라면 편법을 쓸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대출총액을 규제해야지, 금융감독원이 편법으로 주택 대출을 전면 중단하다시피 난리를 피우다가 겨우 하루 만에 재개해서는 정책 불신만 키울 뿐이다.

빗나간 세금폭탄 되레 집값 올렸다

주택 대출 규제의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11월 중 은행당 주택 대출 한도를 정했다는데 이는 서민의 피해만 초래할 수 있다. 대출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주택 대출 규제 조치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은행 경영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은행 지점마다 주택 대출을 늘리기 위해 애쓰는 것은 실적이 나쁘면 그만큼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주택 대출 실적은 평가에서 제외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주택 대출 과열 경쟁을 막는 것도 필요하다.

“며칠 밤새워서 만들었다”는 정책 담당자의 고백처럼 ‘11·15대책’은 완결성이 떨어져 사태 해결에는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들어가야 할 부분이 빠진 것도 있고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미흡한 점도 확인된다. 후속 보완 대책이나 9, 10번째 대책의 발표가 불가피해 보인다. 부디 숨바꼭질하는 듯한 부동산 대책은 열 번으로 끝내 대학 입시 정책보다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