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대통령 단임제 탓이오’

  • 입력 2006년 11월 8일 20시 41분


코멘트
바야흐로 ‘대통령 수난 시대’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대통령의 권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최고 권력자를 향한 국민의 고함만 나날이 커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중간 평가로 여겨지는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지원 유세에 나섰으나 집권당인 공화당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12년 만에 하원 다수당의 자리를 민주당에 내주는 참패였다. 공화당 후보들이 인기 없는 대통령과 함께 나서면 오히려 표가 떨어진다며 그를 피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대통령 투자’ 실패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국민의 손가락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겨우 24%의 지지를 얻어 1978년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이 대통령 인기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기록을 세웠다. 그를 향해 ‘기회주의자’ ‘킬러’ ‘야생 고양이’라는 악담들이 날아들고 있다. 조간신문 리베라시옹에는 “‘시라코포비아(시라크 혐오증)’가 새로운 국민 스포츠로 등장했다”는 기사까지 실렸다.

국력이나 국제적인 영향력으로 견주면 미국과 프랑스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미움받는 대통령’ 부문에서는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는 것인지, 우리 대통령의 인기도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겨우 4년 전에 선택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열기가 싸늘하게 식고 그가 만든 집권당까지 공개적으로 파산을 예고하는 상황이 됐으니 아무리 머리를 짜 내도 쪽박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투자’에 실패했다.

얼핏 보면 오십보백보인 것 같지만 우리의 사정은 미국과 프랑스보다 훨씬 고약하다. 부시와 시라크는 재선의 관문을 넘어선 대통령이다. 미국과 프랑스 국민은 새 대통령 부시와 시라크를 선택한 데 이어 각각 4년과 7년의 첫 임기를 마친 그들을 다시 평가해 두번째 임기를 부여했다. 집권 1기에 국민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지 않았으면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에 나타난 미국과 프랑스의 ‘대통령 때리기’에는 빛바랜 신선함이라 할까 어느덧 식어 버린 사랑이라 할까, 어쩔 수 없는 세태의 변화가 담겨 있다. 부분적인 하자에 대한 불만이지 전면 거부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런 수준이 못 된다. 대통령이 정책과 인사에서 지금처럼 국민 뜻 거스르기를 계속하면 남은 임기에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추락한 대통령의 권위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통령이 동네북이 되지 않았는가. 해외 주재 고위 공무원이 사석에서 대통령을 비판했다 하여 소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실패는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대통령 단임제’ 탓이 크다. 임기 말이 될수록 재선을 위해 국민의 여론을 존중해야 하는 ‘제도적 부담’이 한국 대통령에게는 없지 않은가. 이래도 끝, 저래도 끝이니 누가 대통령 직을 부여했는지도 잊은 채 마이웨이를 고집해 어김없이 임기 말 불화가 초래된다.

제도로 사람을 묶어야

요즘 세상에 성인군자 대통령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이다. 다만 인간이라면 그 좋은 자리, 그 막강한 자리에 다시 한번 앉고 싶지 않겠나.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끝까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초심을 퇴임 때까지 간직해야 하는 제도로 대통령을 묶어 두자는 것이다.

마침 집권당 원내대표가 개헌 주장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 시종일관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으면 ‘대통령 단임제’부터 버려야 한다. 단임제를 지속하기에는 국민의 고통이 너무 크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