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경숙]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 입력 2006년 10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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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의 사무총장이 아닌 한국인 사무총장입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한 말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특정 국가의 관점보다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신과 의지를 나타냈다. 이와 같은 원칙에 입각해 신중을 기했던 그의 모습 덕분이었을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만장일치로 그를 지지해 주었다. 이번 선출 과정은 이전과 달리 4차례의 예비투표를 실시함으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했다는 특징이 있다.

유엔 사무총장은 192개 회원국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갈등 조정자이자, 내부적으로 1만7000여 명의 직원과 연간 정규예산 20억 달러의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다. 이를 위해 행정가이자 경영자로서의 전문성도 요구되지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범세계적 이슈들을 다룰 줄 아는 신뢰받는 도덕성도 겸비해야 한다.

그러기에 반기문 사무총장 탄생은 국가적 경사이자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다. 무엇보다 요즈음 대학가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글로벌 리더 양성에 있어 좋은 역할 모델이 돼 무척 반갑고 기쁘다. 이를 계기로 꿈과 열정을 품고 세계를 무대로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노력하는 다음 세대에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글로벌 리더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하다. 국제적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외국어 능력만을 이야기하기 쉽다. 물론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자신과 다른 인종,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면 그 사람들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마음을 열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세계 보편적 가치와 원칙을 배워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반 사무총장을 한국의 사무총장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사무총장으로서 세계 보편적 원칙을 지켜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보다 우리 국익 챙기는 것을 먼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반 사무총장의 인터뷰도 이를 염두에 둔 목소리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1번째로 많은 유엔분담금을 부담하며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등 유엔 내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 가고 있다. 수혜국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국가의 이미지를 구축 중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해 세계 속에서 그 입지를 날로 증대시키고 있다. 이에 발맞춰 우리 국민도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세계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원칙에 입각해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원대한 식견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꿈과 비전을 갖고 이를 성취하려면 이에 상응한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특히 세계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체험뿐 아니라 여러 인종과 국가의 친구를 폭넓게 사귀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은 생활하는 범위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 알아야 보이지 않겠는가. 또한 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크고 넓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반 사무총장이 2001년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있었던 것이 당선에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 필자가 2001년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참석했을 때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이 총회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반 사무총장은 의장 비서실장으로 각국의 대표들을 만나고 현안을 의논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유엔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세상을 향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어제는 유엔 창립기념일이었다. 세계평화와 협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날이다. 올해 10월 24일의 의미는 반 사무총장이 있어 우리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현재 국제기구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은 240여 명에 불과하다. 그들처럼 여러 국제기구에 용기 있게 도전해 새로운 삶의 모델을 개척할 인재들이 앞으로 10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하기를 바란다. 세계의 주류(主流)가 되기 위한 능력과 인격을 함양하는 데 개인과 국가가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로써 한국의 리더가 아닌 한국인 리더가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경숙 객원논설위원·숙명여대 총장 kslee@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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