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정혜]우리들의 그후 20년 ― 홈커밍데이에 찾은 교정

  • 입력 2006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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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돌아보기에 알맞은 계절인 가을이다. 졸업을 기념하여 동창회 차원에서 모교를 방문하는 홈커밍데이 행사가 자주 열리는 철이기도 하다.

세월의 흐름은 젊은 날의 ‘방황’이나 ‘어려움’의 기억을 기적과도 같이 밝은 색채의 ‘탐색’이나 ‘준비 기간’의 기억으로 바꿔 버린다. 과거의 시간에 대해 새로운 해석, 새로운 색채가 덧씌워진다. 젊은 날의 혼돈과 지난함은 세월의 힘으로 복권되며, 세월의 무게가 부여하는 삶의 훈장까지 추서되면서 영예로운 날로 재탄생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게로 짓눌린 젊은 영혼이 있다면, 자학의 덫을 거두어들이는 대신 ‘세월의 힘’을 믿고 기대어 볼 일이다. 젊은 날을 감내하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20여 년 만에 대학 교정을 방문하는 홈커밍데이에는 젊은 날을 함께 견디어 냈던 동지이자 학우를 만난다. 당시 거의 유일한 당락의 잣대였던 대입학력고사의 성적분포도가 너무나 균질적이었던 우리는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전전긍긍했다. 상대적 평가에 의해 몇 퍼센트는 무조건 학년 말에 학교를 떠나야 하는 졸업정원제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강의실 밖으로 한 발만 내디디면 1980년대를 장식하는 야만의 광경이 널려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시인 고정희가 노래한 것처럼, ‘씨 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빨리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서,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나이’에 들어섰다. 주소록의 인적사항을 뒤적이면 오늘 서 있는 이랑의 위치가 새삼스레 확인된다. 더불어 추수하는 알곡의 양도 가늠할 수 있다.

지금의 이랑에서 튼실한 알곡을 수확하는 사람에게서는 놀라울 만큼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부분 자신을 던지고 헌신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는 길을 걸었다. 출발선은 동일했지만 이후의 길은 많이 달라졌다. 달라진 길의 분기점은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품성과 인격의 성숙도이지 않을까. 자신을 버리고 비움으로써 외부로부터 더 많은 것이 채워지고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함으로써 영혼은 더욱 맑고 자유로워져 사심 없이 사물을 읽을 수 있고,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이 가을의 대학 교정은 수시모집 등을 이유로 대학에 첫발을 디디려는 젊은이로 붐빈다. 대학입시만큼 무겁게 다가오는 절박한 명제는 없다. 그러나 대학입시는 앞으로의 긴 여정에 있어 첫 번째 발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 발걸음부터는 그야말로 자신의 내적인 힘으로 걷는다. 삶의 분기점이라도 만날 경우 어느 쪽을 지향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름 아닌 희생과 봉사 그리고 사랑과 같은 인격적 덕목에서 길러진 힘이다. 청소년 시절에 인격적인 덕목이나 심성을 기르는 공부는 성적 올리기보다 훨씬 더 중요할지 모른다. 청소년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면 종국적으로 삶을 결정하는 요소는 입시 결과가 아닌, 희생이나 봉사와 같은 내적 인격과 품성이기 때문이다.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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