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원]기업 CEO는 국감의 봉인가

  • 입력 2006년 10월 9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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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실무자를 불러도 되는데 꼭 최고경영자(CEO)만 찾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대내외 경영 악재로 시달리는 기업인을 자꾸 괴롭혀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북한의 핵실험으로 뒤숭숭한 9일. 한 기업 임원 K 씨는 국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기업 CEO는 11일부터 시작되는 국감에 증인으로 나서야 한다.

K 씨는 “고유가와 환율 불안, 북한 핵실험에 긴급히 대처해야 할 CEO가 지금 국회 증언에 대비하고 있다”며 “이러니 기업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올해 국감에선 어느 때보다 많은 기업인을 보게 될 전망이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정유 4사와 이동통신 3사의 CEO를 비롯해 유통업계, 금융계, 정보기술(IT)업계, 건설업계 등의 CEO 또는 임원 200여 명이 정무위원회와 산업자원위원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증인과 참고인으로 채택됐다. 법제사법위원회와 재정경제위원회도 상당수 기업인에 대해 증인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국감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정부의 실정(失政)을 꾸짖는 자리다. 정부의 정책 실패에 연루됐다면 민간 기업도 질책과 조사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국회가 해마다 기업인을 마구잡이로 부르는 것은 실체적 진실 규명과 거리가 있다. 본질과 무관한 사안에 대해 중복 질문하고 증인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재계 관계자는 “영국은 위법이 드러났을 때만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하지만 한국은 기업인을 한꺼번에 소환한다”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기업인 무더기 증인 채택은 실효성도 떨어진다. 정무위는 17일 하루 동안 33명의 증인 또는 참고인을 신문할 예정이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경우에 따라선 ‘몇 마디’ 답변만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기업인들은 하루 종일 국감장 주변에서 대기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증언대에 서지도 못하고 되돌아간 증인도 있었다.

이렇게 소환된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업인의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일자리도 줄어든다. 나라경제를 위해서라도 국회는 기업인을 무더기로 닦달하는 국감의 악습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주성원 경제부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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