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포털’이라는 괴물

  • 입력 2006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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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통령 선거는 인터넷에서 판가름 났다. 선거는 박빙의 승부로 끝났지만 인터넷 여론에선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9 대 1 정도의 비율로 누르고 있었다. 당시 유권자 500명을 상대로 면접조사를 실시했던 숙명여대 양승찬 교수의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인터넷이 특정집단에서 선거 전반에 걸쳐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인터넷이 대선의 승패를 가른 것이다.

요즘 인터넷의 위상은 4년 전과는 또 다르다. 훨씬 막강해졌을 뿐 아니라 포털 사이트라는 ‘절대강자’가 등장했다. 이른바 5대 포털에 접속하는 사람은 하루 2000만 명에 이른다. 점유율 1위의 어느 포털은 하루 방문객이 1250만 명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국민의 절반이 매일 찾아가는 인터넷 사이트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터넷 강국인 한국의 포털들은 다양한 서비스로 이용자들을 끌어들였다. 무료 e메일을 끼워 팔고 할인 쿠폰을 주고 경품을 제공하는 상술도 동원했다. 어느새 포털들은 거대한 공룡이 돼 국민을 내려다보고 있다.

정보 검색은 기본이고 쇼핑 오락 커뮤니티 뉴스서비스까지 포털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오프라인으로 치면 언론사에 도서관 백화점 오락실 사랑방까지 못하는 게 없고 안 되는 일이 없다.

인터넷의 부작용은 한국에서 먼저 나타나고 홍역도 먼저 치른다. 인터넷 중독 문제는 선진국이 우리한테 배우러 온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는 이전에 볼 수 없던 신종 괴물이다. 포털이 앞으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진화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최근 포털의 뉴스 서비스를 둘러싼 논쟁은 내년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정치 문제로 번지고 있다. 본격 경쟁에 돌입한 대권 주자들은 대한민국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포털의 편집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인터넷 이용자의 90%는 뉴스를 보고 싶을 때 포털에 먼저 들른다. 포털들은 80여 개의 언론사 혹은 뉴스 공급업체와 계약하고 하루 8000개가량의 기사를 공급받아 사이트에 올린다. 포털의 메인 화면에 올려져 곧바로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는 기사는 수십 개에 불과하다. 어느 기사를 메인 화면에 앞세우고 어느 기사를 구석에 처박을지는 오로지 포털 손에 달려 있다.

기사 내용은 손대지 않지만 제목의 70%는 포털이 바꿔 달아 내보낸다. 개그맨 컬투의 기사를 다룬 한 포털은 ‘웃찾사 경쟁에서 낙오된 컬투’라는 잘못된 제목을 달아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뉴스 제목만 보고 마는 사람도 꽤 많다. 대선에서 정치뉴스의 제목을 이런 식으로 바꾸면 당사자들에겐 큰 타격이다.

포털 뉴스는 기본적으로 선정적이다. 클릭 수를 많이 올려야 돈을 벌기 때문이다. 친정부적 성향도 강하다. 포털의 모기업인 정보기술업체들은 정부의 정책과 ‘보이지 않는 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포털에는 친여 매체 기사가 전면에 많이 배치된다. 지난 5·31지방선거 때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인 강금실 씨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긍정적 기사들이 배치됐다. 반면 야당의 오세훈 후보에 대해선 부정적 기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포털은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 얘기가 나오면 뒤로 빠져 버린다. 편집진이 누군지 공개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편집 기준도 내놓지 않는다.

엊그제 신문 방송사가 크게 보도하고 독자의 관심이 높았던 뉴스는 대권 주자들의 지지도 조사였다. 야당의 대권 주자들이 앞서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포털에는 거의 주요 뉴스로 취급되지 않았다. 만약 여당 쪽 주자의 지지도가 높았다면 어떻게 다뤄졌을까. 제도가 사회 현상을 못 따라가는 일이 종종 있지만 더 큰 괴물이 되기 전에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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