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태원]여전히 고압적인 北대남일꾼

  • 입력 2006년 9월 28일 03시 01분


코멘트
26일 남북 합영 석재공장 준공식을 취재하기 위해 개성을 찾았다. 지난해 7월 25∼27일 자남산여관에서 열렸던 남북 경제 관련 협의 취재 이후 1년 2개월 만이었다.

이번 개성 방문은 시작부터 달랐다. 북한 출입의 관문인 관리사무소(CIQ)가 컨테이너 건물에서 지상 2층, 지하 1층의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변해 있었다.

한국토지공사가 개성공단 1단계 용지 100만 평에 대한 토지임차료의 일부로 400만 달러를 들여 지어 준 쌍둥이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는 최첨단 검색기를 갖춘 검색대가 12개나 있어 일일이 가방을 열어 보는 수고를 덜었다. 북측 요원들은 일련번호를 불러 주며 “이 번호를 기억하면 나갈 때 편하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석재공장이 들어선 허허벌판에서 치러진 준공식 행사에는 간이 판매대도 설치됐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측의 도우미 20여 명이 상냥한 미소로 세일즈에 나섰다.

하지만 달라진 모습은 여기까지였다. ‘달라지지 않은 북한’의 구태를 드러낸 주역들은 이른바 ‘대남일꾼’들. 이날 행사 참가를 희망했던 남측 당국자와 국회의원 10여 명의 방북을 불허했던 이들은 불허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남측 당국자들은 아직 더 정화(淨化)돼야 한다”고 고압적으로 말했다.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조치로 쌀과 비료 지원을 유보한 남측 당국에 대한 보복심리를 그대로 드러낸 것. 7월 부산에서 열렸던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수행원으로 왔던 한 북측 인사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행동이 어떤 후과(결과)를 낳을지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측이 수해 지원을 위해 적십자사를 통해 쌀 10만 t을 지원한 건 그들 머릿속에 없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퍼 주기’ 정책에 익숙한 북한 당국은 남측의 지원을 당연히 받아야 할 빚을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개성 방문을 끝낸 남측 방문객 300여 명은 오후 4시경 CIQ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출경(出境) 수속을 하면서 북한 관리들은 대부분 방문객의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하나하나 돌려 보며 검색했다. 입경 때 산뜻했던 CIQ의 분위기는 어느새 1년 2개월 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방문객들 사이에선 “(북한의 변화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소리가 나왔다.

하태원 정치부 taewon_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