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은령]조지프 콘래드의 영어

  • 입력 2006년 9월 19일 2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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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원서강독을 못해 C학점을 맞은 소설 ‘암흑의 심연(Heart of Darkness)’을 다시 만난 건 15년도 더 지난 2000년 미국 연수 때였다. 미국과 비(非)영어권 4개국에서 온 기자들의 이 소설에 대한 잡담은 1899년에 쓰인 원작이 아니라 작품 무대를 원작의 아프리카에서 베트남으로 옮겨 1979년 제작된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시작됐다. “인간 심연에 대한 통찰 같지만 원작의 인종주의가 영화에도 그대로 투영됐다”는 둥 얼치기 비평 와중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한 미국인 기자가 조금 엉뚱한 해석을 내놓았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세계관이 아니라 너무 어려운 영어로 쓰였다는 거야.”

영어가 모국어인 기자들은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작가인 조지프 콘래드(1857∼1924)가 너무 늦게 영어를 배운 사람이어서 쉬운 말도 어렵게 썼다는 해석이었다.

콘래드는 폴란드 사람이었다. 부모를 일찍 잃은 뒤 그는 뱃사람이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고 스물아홉 살에 영국 시민권을 얻었다.

20일까지 본보가 5회에 걸쳐 연재한 ‘영어 안 되는 영어교육’ 와중에 콘래드가 다시 생각난 것은 그의 혼이 폴란드어에 반응할까, 영어에 반응할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집집마다 학원비, 해외 연수, 캠프에 쏟아 붓는 한국의 영어 사교육비를 합하면 어림잡아 한 해 10조 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영어가 안 되는’ 상황에서 취재진이 궁극적으로 맞닥뜨린 것은 ‘영어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감정’이었다.

한국에서 영어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 민족 문제와 맞물려 있는 ‘이데올로기’다. ‘미국 명문대 출신, 원어민 강사, 미국 교과서 사용’이라는 수식어가 하나씩 붙을 때마다 수업료는 올라가고 부모가 비용을 얼마나 지불할 수 있는가는 사회적 계층 구분의 ‘표지’가 된다. 실제로 얼마만큼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가는 차후의 문제다.

‘민족’과 얽히면 실타래는 더 꼬인다. 일제강점기 우리 말글을 빼앗겼던 뼈저린 경험에다 전 세계를 미국식으로 집어삼키는 ‘세계화’가 영어제국주의를 통해 구현된다는 주장까지 맞물리면 ‘영어공용화’는 매국노 발언을 면하기 어렵다.

영어가 소통의 도구이기보다는 ‘이데올로기’인 현실은 효율적인 학습방법을 찾는 길을 가로막는다. 가장 값싸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인 공교육 시스템의 강화나 사회적 인프라 구축은 번번이 ‘국민정서’에 먼저 부닥친다.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영어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가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1500개의 기본 단어만 이해하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며 잉글리시가 아닌 글로비시(Globish)를 써야 한다는 제안이 등장하는 것도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영어의 재발견이다. 1500개의 기본 단어를 익히는 데는 10조 원의 비용이 훨씬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 계층의 표지나 민족의식의 투철성을 검증하는 지표가 아니라면 영어에 대해 훨씬 유연해질 수 있다.

늦게 배운 영어로 써서 원어민까지 고생시킨다는 콘래드의 소설이 100년 넘게 읽히는 것은 그의 작가적 경험이 이끌어 내는 ‘소통’과 ‘공감’ 때문이다. 소통은 때로 1500개가 아닌 15개 단어로도 충분하다.

정은령사회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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