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의원님들, 공부 좀 하시지요

  • 입력 2006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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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둘러싼 소동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한국 헌정의 여러 본질적 병폐를 너무도 압축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청와대의 독선, 권력에 종속된 사법부, 부실한 국회 인사청문회, 헌법 절차의 경시, 여야 정당의 탈출구 없는 대치, 무엇보다 국정을 맡은 삼부(三府) 관계자들의 무지와 억지가 한 편에 담겨 있다.

이 소동이 단순한 가상의 코미디가 아닌 현실이라는 데 사안의 심각함이 있다. 헌법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 수장을 편법으로 뽑으려다 난리를 겪는 코미디 같은 현실에서 등장인물 중 누가 주역 피에로인지는 말하기 힘들어 보인다. 경중을 논하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무지, 억지, 오만, 위선을 상징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는 뜻이 맞는 전 후보를 헌재 소장으로 지명하는 데까지는 괜찮았을지라도(이것도 코드인사 논란을 일으키지만), 잔여 임기 3년이 아닌 새 임기 6년의 소장 직을 보장하려다가 헌법 규정과 맞지 않는 편법을 시도했다. 헌재 소장은 헌재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 조항을 무시한 것이다. 편법이란 사실을 몰랐다면 무지를 드러낸 것이고, 알았다면 오만과 치졸함을 드러낸 것이다.

전 후보자는 누구보다도 헌법을 지켜야 할 능력과 의지를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헌법을 저버리는 아이러니를 저질렀다. 헌재 소장의 자격에 대한 헌법 조항을 간과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더 중요하게는,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성이란 헌법 정신을 깨뜨렸다. 임기 6년의 헌재 소장이 되기 위한 방편과 관련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전화를 받고 그에 따랐다니 이해가 안 된다. 안타깝게도 무소신, 종속성이라는 한국 사법부의 과거 이미지를 복원시켰다.

특히 여야 의원들이 피에로 역할을 했다. 조순형 의원의 문제 제기 전까지 의원들은 편법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기본이 약하다는 소리다. 헌재 소장의 헌법적 자격 조건에 대한 기초적 공부도 없이 인사청문회를 치렀다. 의원의 의정활동이 전에 비해 활성화되고 있다는 일부 세간의 평이 쑥스럽다. 물론 인사청문회 준비 기간이 너무 짧다는 제도상의 한계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부가 부족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의원의 전문성 부족은 이번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반 법안과 예산안의 심의나 국정감사에도 일반적으로 해당된다. 미국 의회를 모범으로 삼아 각종 제도를 모방하면서 정작 평소 공부하는 전문적 의원 상(像)이라는 가장 중요한 점을 배우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의원들은 헌재 소장 후보자 청문회의 법적 하자를 간과하고 지금 와서 인준투표 실시 여부를 놓고 교착에 빠졌다. 여당 의원들은 헌법 조항을 어겼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면서도 그대로 강행하자고 한다. 무지에 오기, 억지가 합해진 경우다. 야당 의원들은 청와대와 여당을 비난하면서도 자기들의 무지와 책임엔 관대하고, 헌재 소장 임명에 관한 헌법적 정당성의 문제보다는 대선 전망과 관련된 얄팍한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에 신경 쓰는 것 같다.

헌법은 한 나라의 가장 근본이 되는 틀이고, 헌재 소장은 그 틀을 지키는 최고 지도자다. 그 틀의 내용과 정신을 어기면서 헌재 소장을 인준한다면 국회 스스로가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셈이다. 그럴 경우 헌재의 정통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헌재의 판결을 사회가 두루 적극 수용할 수 있을까? 헌재 소장 임명은 상황논리에 따른 정치적 해법에 의존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헌법과 국가의 기초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은 이제라도 헌법 절차의 정당성을 상식적이고 원칙적으로 존중함으로써 한국 헌정의 비극성을 줄여야 하고, 차제에 기초지식과 전문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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