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세욱]부적절한 직급, 부적절한 항의

  • 입력 2006년 8월 12일 03시 01분


코멘트
전국 16개 시도지사들이 민선 4기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시도지사협의회에서 차관급(서울시장은 장관급)인 시도지사를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내용을 29개 대(對)정부 건의안 중 하나로 채택하고 연봉을 장관급 수준으로 인상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시도지사의 직급이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조정되면 연봉이 현행 8257만 원에서 8813만 원으로 556만 원(6.73%)이 인상된다.

취임한 지 40일밖에 안 된 시점에, 그것도 처음 모인 자리에서 주민의 복지 증진과 지역경제 살리기 등 산적한 공동 관심사를 제쳐 두고 자신들의 지위 격상 및 연봉 인상 문제를 거론한 것은 부적절했다. 지난 5·31지방선거 때 시도지사 후보들은 한결같이 자기만이 지역발전과 주민 복리를 증진하는 데 최적임자라며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했는데 당선된 후 첫 모임에서 경험을 공유하며 향후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제 잇속부터 챙기려 했으니 비난받아 마땅하다.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지위 격상과 연봉 인상부터 요구한다면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시민단체의 비판은 타당하다. 더구나 지금은 엄청난 수해를 당한 국민이 망연자실하고 있으며 복구가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이재민 구호와 재해지역 복구에 앞장서야 할 시도지사들이 수해복구지원금의 증액 등보다 자신의 연봉 인상을 건의하기로 하였으니 비난을 면키 어렵다.

다만 시도지사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에 앞서 원론적인 측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서울시장을 제외한 시도지사의 직급을 차관급으로 한 것은 진작 청산했어야 할 관치시대의 유물이다. 시도지사가 임명직이었던 1995년 이전까지는 차관급이었고 당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보나 기획관리실장(1급)을 차관급으로 승진시켜 시도지사로 내보냈다. 하지만 시도지사가 민선직으로 바뀐 1995년 이후에도 정부는 임명직 때의 직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경기지사가 차관급이라면, 차관급 1명 뽑자고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경기도 주민들이 투표장으로 나가 투표를 했단 말인가? 5·31지방선거 때 참여정부는 행정자치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장관을 사퇴시켜 각각 충남 경기 부산의 지사 및 시장선거에 출마시켰고, 여당은 사활을 건 지원 유세를 펼쳤다. 이들이 당선되었다면 장관에서 차관급으로 강등되는 셈인데 차관급 3명 당선시키자고 그 난리를 쳤단 말인가?

따라서 시도지사들이 장관급으로 조정해 달라는 건의는 과소평가된 그들의 법적 지위를 회복시켜 달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정부가 시도지사를 차관급으로 묶어 둔 이유는 어찌 보면 지방정부의 위상을 격하시키고 정부의 통제하에 두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시도지사를 차관급으로 해야만 행자부 장관이 통제 감독하기 쉽다. 게다가 시도지사의 법적 지위와 연봉을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예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지방의회가 의결로 연봉을 결정한다.

더 기이한 현상은 선거직 공무원을 임명직인 장차관, 이사관, 부이사관 등 임명직 공무원의 직급에 억지로 맞추는 것이다. 선거직인 국회의원은 그 자체가 법적 지위인데 굳이 장관급으로 하느냐, 차관급으로 하느냐를 놓고 논란을 벌인 적이 있다. 시도지사는 시도지사급이다. 임명직인 차관급으로 결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정부는 시도지사의 직급을 임명직 공무원 직급에 억지로 맞추어서는 안 된다. 시도지사들도 장관급으로 격상시켜 달라고 건의할 것이 아니라 임명직 공무원 직급으로 결정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 시도지사들은 정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지금은 더 시급한 민생문제와 수해복구에 전념해야 할 때이다.

정세욱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