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근혜 공주’

  • 입력 2006년 6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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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는 ‘21세기 강국으로서의 한국’이란 주제의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초청받은 한국 정치인은 김근태 박근혜 의원 두 명. 오늘날 여당과 야당의 현직, 전직 수장이지만 당시는 두 사람에게 모두 힘든 시기였다.

김 의원은 그해 3월 자신의 경선자금 고백으로 당 내외에서 코너에 몰렸다. 박 의원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갈등을 빚고 탈당한 직후였다.

당시 파리특파원으로 회의를 취재하다 만난 두 사람의 반응은 상이했다. 김 의원은 경선자금 고백을 후회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이 총재의 ‘독단적 당 운영’에 항의해 탈당한 것이 옳았다는 확신이 넘쳤다.

박 의원과 인터뷰하면서 ‘콘텐츠가 충실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당을 출입하며 만나 본 여느 초·재선의원보다 훨씬 신중했고, 큰 그림을 읽는 눈도 뛰어났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드물게 ‘정치 조기교육’을 받은 경우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로 육영수 여사가 비운에 간 1974년부터 1979년까지 5년간은 직접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여당에서 9명의 당 의장이 바뀌는 동안 부동의 대표 자리를 지키다 정당 사상 드물게 임기를 채우고 제 발로 내려간 것은 높은 대중적 지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의 딸, 그것도 부모를 모두 비명에 보낸 ‘비운의 공주’ 이미지까지 겹쳐 어디를 가도 박 전 대표의 얼굴을 보려는 사람이 늘어선다.

하지만 박 전 대표에 대한 대중적 지지에는 어딘가 불안한 대목이 있다. 지방선거 전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20대 이하와 60대 이상 여성에게서 한나라당 내 대권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반면 이 시장은 30∼50대 남성에게서 박 전 대표에 비해 훨씬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학력별로도 박 전 대표는 중졸 이하에서, 이 시장은 대학 재학 이상에서 훨씬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가 이 시장보다 감성적이며 이 사회의 근간인 30∼50대 남성, 특히 화이트칼라층이 박 전 대표를 이 시장보다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행정중심복합도시법과 사립학교법 처리과정 등에서 보여 준 박 전 대표의 안이한 대응과 ‘공천권 하방(下放)’으로 오히려 한나라당 선거사범을 양산한 데 대해서는 ‘아직도 공주’라는 평가가 당내에서 나왔다. 이회창 전 총재가 두 번의 대선에서 패한 주요 원인은 ‘귀족’ 이미지였다.

박 전 대표는 존경하는 인물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33∼1603)을 꼽는다. 엘리자베스 1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사형당한 ‘비운의 공주’ 출신. 45년간 영국을 통치하며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끝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공주는 신비롭고, 그래서 끌린다. 하지만 공주이자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보다는 자수성가해 정치지도자가 된 뒤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처럼 국민과 가까운 지도자가 오늘의 한국이 요구하는 지도자상이 아닐까. 대표 직을 벗고 큰 그림을 그리는 박 전 대표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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