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실 등지고 역사에 회귀하려는 대통령

  • 입력 200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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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요즘 ‘역사 강의’에 빠져 있다. 평소 케이블 TV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는 대통령은 16일 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도 “역사에서 배워야 하며, 역사에서 답이 나온다”며 1시간 반 동안 역사 강론을 펼쳤다. 6·25전쟁 참전용사 위로연에서도 갑자기 “2000년 동안 여러 차례 외침을 받아 왔다”며 원고에도 없는 연설을 했다. 포털사이트 대표들과의 오찬모임에선 “멀리 역사의 인과(因果)관계를 보고 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정부가 헝클어 놓은 현실, 돌이킬 수 없는 3년의 실패를 딛고 국정을 정상궤도에 되돌려 놓을 생각을 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역사’의 뒤로 숨을 궁리나 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현실의 참고일 뿐이다. 오늘날같이 ‘복잡계(複雜界)’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국제적 국내적 환경 속에서 역사만 바라보고 정치, 외교의 일의적(一義的) 해답을 구하려는 것은 몽상일 뿐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역사가’나 ‘사상가’가 아니다. 국정운영을 잘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국민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 줄 ‘리더’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역사타령’만 하면, 자신은 잘하고 있는데 시대가 몰라준다는 원망처럼 들릴 수 있다. 대통령은 ‘현실의 평가’와 ‘역사의 평가’는 다를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아집과 착각일 뿐이다.

대통령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병완 비서실장까지도 23일 한 강연에서 “참여정부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려면 세종대왕이 와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서 정권은 왜 쥐고 있는가. 그는 또 “경제는 잘하고 있는데 민생이 어렵다”면서 “민생이 어려운 것은 1997년 외환위기가 가져온 과잉구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 실패의 책임을 10년이 다 된 외환위기에 돌린 것이다.

오늘의 문제를 고민하고 내일을 설계하기에 바빠야 할 대통령과 참모들이 역사타령, 과거타령 하기 바쁘니 국민이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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