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석연]국민의 저항권 행사를 부르려는가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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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부자당이라 하지만 내가 아는 노점상들도 다 한나라당 찍었어. 사람이 먹고살게는 해 줘야지. 말로만 서민 타령이지 실제로는 영 아니야. 나도 왜 부자로 살고 싶지 않겠나.” 서울 영등포에서 노점상을 하는 김모(37) 씨의 얘기다. 친여(親與) 성향의 한 신문에 실린 김 씨의 이 말은 현 정권의 5·31지방선거 참패 원인과 향후 정책 방향을 정확히 짚어 주고 있다.

“살기도 어려운데 그 많은 돈을 들여 서울을 옮긴다니. 제발 우리 같은 사람 장사나 잘하고 편히 살게끔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힘내세요.” 2년 전 신행정수도이전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낼 때 시민들이 보내준 격려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한마디로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을 편 가르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 좀 그만하라는 것이다.

헌정사상 최대의 집권당 패배로 기록된 이번 선거 결과는 대한민국호(號)의 주인들이 직접 나서서 선장인 대통령에게 ‘배가 난파되기 전에 기존 항로를 바꿀 것’을 분명하게 지시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승리를 애써 폄훼하려는 양비론자들도 이번 선거가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평가라는 데에는 일치한다. 국민의 84%가 선거 패배에 대한 노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그 나라의 제도나 의식, 문화, 정치 구조 등의 수준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면서 선거 결과를 국민 수준 탓으로까지 돌리려는 발언을 했다가 비판이 일자 선거 패배에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당 해체 위기에까지 직면했던 열린우리당도 기껏 미세한 부분의 정책 변경 여부를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등 상황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 이야말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헌법 원칙을 무시하는 독선과 만용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의결, 신행정수도이전법 위헌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정권의 ‘헌법과의 불화’는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한 사람이 꿈을 이뤄 부자도 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떠받쳐 주는 ‘사회의 기본적인 틀’이 바로 헌법이다. 잘나간다거나 부자인 것만으로 기득권층으로 매도해 개혁 대상으로 삼는 이 정권의 반(反)헌법적 정책은 사회의 역동성(力動性)을 해치고 보통 사람들의 잘살아 보겠다는 꿈마저 꺾었다.

2008년부터 국경일 중 유독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헌법만큼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 정책’ 운운하는 오만함에서 이 정권의 헌법 경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사립학교법, 신문법, 부동산 관련 세법, 과거사법 등 위헌 소지의 법률이 왜 이토록 많은가. 가관인 것은 7월부터 법률이 아닌 시행령(주택법시행령)으로 주택거래 신고지역 내의 모든 주택 구입자에 대해 자금 출처 등을 조사하겠다는 발상이다. 법치주의의 근간마저 훼손하면서 부동산 정책을 성역화(聖域化)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성역화인가. 세금 만능주의에 입각한 부동산 정책이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는 것이 세계 각국의 경험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주권자의 의사를 표출한다. 투표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뜻은 지방선거든 대통령선거든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대통령은 선거에서 확인된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정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헌법상 국민주권주의의 기본 원리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국가 권력에 의해 헌법의 기본 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해지고, 다른 합법적인 구제 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 국민이 자기의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로서 제한된 범위에서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다. 국민의 가장 큰 심부름꾼인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항로를 바꾸라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국민은 저항권 행사라는 헌법의 경계선상에 설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민심 이반이 가속돼 국민의 저항권 행사로까지 발전하기 전에 지금까지의 국정운영 기조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이것이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권력의 폭주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국민의 자구책이자 주권자로서의 엄격한 요구이기도 하다.

이석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헌법포럼 상임대표 stonepo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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