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멀로니의 변명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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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간 신문 톱기사가 어떻게 나올지보다 10년간 캐나다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판단해 정책을 결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차례 인용해 논란이 된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는 퇴임 5년 후인 1998년 10월 캐나다 ‘오타와 시티즌’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멀로니 전 총리의 이 말은 여당의 5·31지방선거 참패 직후 “칭찬만 받을 수 있는 일과 국가적으로 꼭 해야 할 일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 있다”던 노 대통령의 발언과 매우 닮았다.

멀로니 전 총리는 “일부 언론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demonize)’”며 그런 평판은 역사의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면 사라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퇴임 후 5년이 지난 당시까지도 자신을 비판하는 신문을 보는 게 불쾌하다며 “5년은 나의 업적을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주장했다.

또 ‘대중의 박수를 받으며 물러난 지도자는 현대 산업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미국 언론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현대사를 돌아볼 때 박수 대신 비난과 모멸을 안고 물러난 지도자가 재평가를 받은 일은 드물다. ‘박수 받고 퇴임하면 실패한 지도자’라는 멀로니 전 총리의 말은 애처롭게까지 들린다.

무엇보다 그는 퇴임 후 5년이 훌쩍 지나고 13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캐나다에서 평가받지 못한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들은 그가 ‘1991년 연방부가세(GST)를 도입해 재정파탄 위기의 캐나다를 구했다’고 했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재정적자를 그렇게 늘린 장본인이 바로 멀로니 전 총리였다.

1984년 45세의 젊은 나이로 총리에 오른 그는 국정 운영 미숙 등으로 연방 재정적자를 3배나 늘렸다. 설혹 GST 도입으로 재정적자를 줄였다 해도 집권 7년의 실정(失政)을 땜질하는 처방이었다. 캐나다 국민이 그를 좋게 평가해 줄 수 없는 이유다.

멀로니 전 총리의 경우에서 보듯 국가 최고지도자가 ‘역사의 평가’를 입에 올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자신에 대한 내심의 평가가 민심의 평가와 다를 때, 정치적으로 몰릴 때, 지지율이 떨어질 때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노 대통령의 경우도 집권 초반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역사를 읽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했다”는 등 주로 ‘과거사’에 천착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부터는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등을 거론하며 후세 역사의 평가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몰리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자꾸만 ‘역사의 평가’로 도피하는 듯한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역사의식은 갖되 현실을 직시하며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차근차근 국정을 운영하다 보면 뒷날의 평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아닐까.

더구나 현직 대통령이 자꾸 ‘역사의 평가’를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실정이나 독선, 심지어 독재까지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24년 뮌헨에서의 봉기 실패로 법정에 선 아돌프 히틀러는 재판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판결할 수 있는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영원한 역사의 법정이다. 우리를 유죄라고 백번이라도 판결해 보라. 역사의 법정은 코웃음을 치고 그 판결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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