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도청 공무원이 도지사 못뽑은 지 12년

  • 입력 2006년 6월 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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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참! 충남도청에서 일하면서 매번 도지사를 내 손으로 뽑지도 못하고….”

곽유신 충남도 자치행정국장은 올해 지방선거도 허탈함 속에 치렀다.

곽 국장은 31일 오전 8시 반 대전 중구 대흥동 A 교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대전시장과 중구청장, 대전시의원, 중구의원 등을 선출하는 투표를 했다. 그러고는 충남지사 선거가 차질 없이 진행되는지 살피기 위해 곧바로 인근 선화동의 충남도청으로 출근했다.

대전시는 1989년 충남도에서 분리됐다. 하지만 충남도청이 그대로 대전에 머무는 바람에 곽 국장은 1995년부터 벌써 4번째 대전 지역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고 있다. 주소지를 충남으로 옮겨 투표할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럴 경우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충남도 공무원 3000여 명 가운데 충남 지역 사업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제외한 1300여 명은 곽 국장과 같은 처지다.

전남도는 지난해 도청을 광주에서 전남 무안으로 이전해 이런 문제를 해소했다. 하지만 도청이 대구에 있는 경북도는 아직도 충남도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충남도는 2012년 홍성-예산으로 도청을 이전하기로 결정했고 경북도는 2년 내에 터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 한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선거는 표의 등가성(等價性)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해당 자치단체 공무원의 한 표는 사실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업무를 통해 후보자의 정책에 대한 비교 판단이 가능하고 후보에 대한 정보도 많기 때문이다.

일부 공무원은 인구 100만 명을 넘으면 칼로 무 자르듯 광역시로 분리해 온 것이 각종 문제점을 잉태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방선거가 실시된 지 10년이 넘도록 같은 문제를 방치했다는 점이 행정의 무신경과 비능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용교 충남도 행정도시건설지원단장은 “주소지 투표방식의 예외를 규정한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충남도와 경북도 공무원도 자신이 근무하는 자치단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투표율 못지않게 투표의 질(質)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당국과 입법부가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지명훈 사회부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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