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지방선거의 경제학

  • 입력 2006년 5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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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독재 시절에는 차라리 투표하기가 쉬웠다.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당에 표를 던졌다.

민주화가 되니 투표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정당 인물 공약 등 고려할 요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지방선거는 압권이다.

주말에 집에 들어온 선거 공보물이 25개에 250쪽이 넘었다.

재미도 없고 내용도 없는 홍보물이지만 꾹 참고 읽었다. 서울시장과 구청장 후보들까지는 봤는데 이 밖에도 시의원, 구의원, 비례대표 의원….

세상에, 이 많은 홍보물을 다 읽거나 수십 명 후보의 유세를 보고 꼼꼼하게 비교해서 투표하는 사람이 전체 유권자 가운데 몇 퍼센트나 될까.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기능과 디자인을 간소화하기 위해 애쓴다. 유독 정치 서비스만 수요자 아닌 공급자 위주다. 수십 명의 후보를 연구하고 기억해서 6장이나 투표하라니 너무 심하다.

오늘 실시하는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낮을까봐 걱정들이다. 하지만 투표율 낮은 것이 단순히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 때문일까.

경제학에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라는 용어가 있다. 개인이 얻는 이익에 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 너무 많을 때는 무시해 버린다는 것이다. 시간 노력 돈 등 자원이 한정된 개인에게는 그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다.

누가 선출되든 자신에게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낄 때, 그리고 선택을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 너무 클 때는 좋아하는 정당에 몰표를 던지거나, 대충 찍거나, 기권하는 것이 개인에게는 경제적 선택일 수 있다.

‘합리적 무시’는 국가 전체에 중요한 문제가 왜 국민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 일부 이익집단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정치인과 그 주변 사람들이 필사적인 데 반해 유권자들은 시큰둥한 지방선거에도 들어맞는다.

유권자의 불편함은 아랑곳없이 정치인들 마음대로 제도를 만들어 놓은 뒤 ‘선거가 애국’이라고 강조한다고 투표율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이번에 퇴임하는 정영섭 서울 광진구청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의원의 수가 쓸데없이 많은 것은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지키기’ 때문”이라며 “기초의원부터 뽑고, 그중 득표가 많거나 호선(互選)으로 선발된 기초의원들에게 광역의원도 겸하도록 하는 게 낭비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충고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별로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그렇게 많아야 하는지, 국회의원 광역의원 기초의원을 별도로 뽑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경제 논리를 핑계로 대충 투표하자니 본전 생각이 난다.

시도의원 733명의 연봉이 평균 4683만 원, 시군구의원 2888명의 평균 연봉 2765만 원에다 단체장 246명의 평균 연봉을 8000만 원으로 계산하면 이들의 월급으로 나가는 돈만 연간 1400억 원 정도다.

더구나 지난해 나라 전체 예산 164조 원 가운데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한 예산은 92조 원(56%)이나 됐다.

번거롭더라도 이번만은 눈 부릅뜨고 선택한 뒤 정치인들에게 효율성을 따져야겠다.

민주시민 노릇 하기도 힘들다.

신연수 경제부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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