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종석]외곬 정책과 종합 정책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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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있는지 없는지 단정하기도 어렵고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될 ‘부동산 버블’에 관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연일 위협성 발언을 쏟아 놓더니 급기야는 ‘강남 3개구 집값은 버블 붕괴 직전’이라고 한다. ‘부동산 값이 50% 떨어져도 금융기관은 문제없다’는 등의 막말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쯤 되면 정부가 버블 붕괴를 걱정하는 건지, 붕괴를 유도하는 건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부동산 세금 폭탄이 아직 멀었다’는 청와대 고위 인사의 말 한마디에 괜히 뒤숭숭하고 ‘종합부동산세 한번 내 보라’는 대통령의 발언에 부자가 아닌 국민조차 약간은 마음이 졸아 든다.

따지고 보면 주객이 전도되어도 보통 전도된 일이 아니다. 경고성 발언은 언론이 하고, 정부는 국민의 불안 심리를 안정시키면서 진화 대책 마련에 부심해야 할 것 같은데 상황의 전개는 정반대다. 그러니 정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처방이 올바를 수 없다.

최근에 만난 한 여당 인사는 부동산 버블을 걱정하면서 붕괴 문제를 정부 여당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오로지 부동산 한 방향으로만 치닫는 당국자들의 그런 생각이었다.

부동산 문제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잡아 보겠다는 것이 이 정부의 신념에 가까운 의지이다. 정책 하나라도 끝까지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것이 역사에 남는 업적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도 대통령과 고위 인사들의 발언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의도를 나무랄 수야 있을까마는 부동산 문제에 ‘다걸기(올인)’식으로 접근하다가는 부동산 자체를 못 잡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경제 전반에 큰 주름이 가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외곬 정책’의 폐해를 우리 경제는 과거에 너무나도 많이 경험했다. 1998년 주택건설 부양책은 2002년 건설경기 버블을 불러왔고, 1999년 소비 진작을 위한 신용카드 활성화 대책은 ‘가계 빚’ 문제를 낳았다. 모름지기 정책은 종합예술이어야 한다. 전체 경제에 미칠 영향을 폭넓은 시각으로 고민한 후 선택하고 집행해야 한다. 머지도 않은 과거에 경험한 실패를 지금 다시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가 걱정해야 할 경제 문제가 부동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 현안 중에는 부동산 외에도 시급한 것이 많다. 투자가 가라앉은 지 오래며 성장잠재력은 정체돼 있고, 고유가에 원화절상이 겹친 데다 그나마 신나게 달리는 것 같던 주식시장마저 주눅이 들어 있다. 이런 시점에 정책 당국의 관심을 부동산 문제에만 붙들어 두어서는 안 된다.

부동산 문제로 시야를 좁히더라도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정부와 금융 당국자의 혼선을 야기하는 발언으로 경착륙 가능성만 높여서는 곤란하다. 시장 기능을 통해서 연착륙을 유도해 경제 전반에 미칠지도 모르는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버블 붕괴에 따른 일본식 장기 불황을 걱정한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상승폭이나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비율 등의 측면에서 당시의 일본과 비교해 볼 때 우리 상황은 그렇게까지 심각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부동산 가격이 너무 높고 그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지금 우리가 일본의 선례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버블로 인한 장기 불황이 아니다. 오히려 금융제도로 집값을 잡으려다 지나쳐서 결국은 경제를 장기 불황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하지 않았는가.

예종석 한양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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