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유윤종]기차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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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의 대표작으로 ‘기차 시간은 정확했다(Der Zug war p¨unktlich)’라는 소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징집돼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끌려가는 군인의 생애 마지막 사흘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의 제목에서 작가는 ‘비인간적인 가치에 봉사하는 정확성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정시성(定時性)’은, 선악의 가치를 떠나 독일인을 표상하는 제1의 특징으로 여겨져 왔다.

독일정신을 대표하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산책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테오도어 헨슈 박사의 분광학 연구도 초정밀 시간계측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가장 독일적인 연구 성과’로 주목을 끌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독일인은 얼마나 정확할까.

기자는 지난달 하노버 산업박람회 취재를 위해 초고속열차 ‘ICE’를 탔다. 기차는 느림보 운행 끝에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기관사는 “근처에서 일어난 사고로 연착하게 됐다”는 안내방송을 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기차도 15분 이상 연착했다.

며칠 뒤 차두리가 출전하는 경기를 보기 위해 도르트문트로 갔을 때도 기차는 ‘정확히’ 1시간 연착했다. 기차역의 신문 판매대에서 주간지 ‘슈테른’을 사서 펼쳐 보니 ‘장거리 열차의 20%가 10분 이상 연발착함에도 배상 규정은 미흡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2002년 뮌헨에서 기자에게 독일어 회화를 가르쳤던 아네테(그는 프랑스식으로 ‘아녜트’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씨는 “이제 독일인은 예전처럼 정확하지 않다. 기차도 제 시간에 오지 않는다. 사무실에서의 업무 강도도 예전 같지 않다. 정확한 것보다 삶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당시에는 늦은 기차를 경험해 보지 못 했을 뿐이었다.

역시 같은 해 만난 소설가 겸 사회평론가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는 “기대보다 일찍 많은 것을 성취한 자는 성취의 독에 빠지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패전 후 국가의 존속은 차치하고라도 개개인의 목숨이나 건지기를 기대했던 독일이었지만 이 나라는 수십 년 동안 기대 이상의 경제 부흥을, 이어 아무도 예상 못한 통일까지 성취했다. 그 뒤의 경기 후퇴와 사회적 이완은 이러한 성취의 역작용이라는 것이다.

혹 요즘 독일 일각에서 일고 있는 ‘왜소화’ 논란도 독일이 이룬 성취의 역작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최근 ‘독일 정치가 왜소해졌다’고 질타했다. 이제는 아무도 거대하고 중요한 것의 가치를 힘주어 역설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주요 정당 간의 대결마저도 대연정 성립 이후에는 ‘미세한 정책 조정’으로 왜소해졌다는 것이다.

주간지 ‘차이트’는 독일 좌파도 왜소해졌다고 지적했다. 20세기 초에 ‘혁명으로 사회를 전복하겠다’더니 2차 대전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혁하겠다’고 말했고, 이제는 ‘시민들에게 불편한 요소들을 바꾸겠다’는 식으로 목표가 작아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며칠 전에도 기차에서 이런 상념에 빠져 있었는데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오후 11시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서 기차를 바꿔 타야 하는데, 또 10분이나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항역에 도착한 순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바꿔 타야 할 기차도 15분이나 연착한다는 안내등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유윤종 독일 특파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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