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영아]조국 잊어가는 젊은 ‘자이니치’들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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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3세인 소프트뱅크 손정의(孫正義·손마사요시) 사장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본 이름 야스모토 마사요시(安本正義)를 버리고 한국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사업상의 이유로 일본인으로 귀화할 때는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손(孫)’이라는 한국 성으로 국적을 취득했다.

그렇다고 그가 대단한 조국애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는 “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며, 본래 이름이 손정의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쓴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반세기 만의 화해가 대서특필되고 있지만 교포 3세 젊은층은 별로 관심이 없다.

교포 3세들은 “두 단체가 화해한다니 환영할 일이지만 뭐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관심 없다”, “우리는 이미 나름대로 교류하고 있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적은 한국이나 조선, 또는 무국적인 이들은 ‘자이니치(在日)’라 불린다. 흔히 조국에도, 일본에도 속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다.

부모나 조부모 세대가 분단의 장벽에 갇혀 고통을 겪는 것을 익히 보아 온 그들이지만 ‘나는 나’일 뿐이다. 그들에겐 조국은 막연한 마음의 고향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삶과 연관되는 고리가 없다. 당연히 조국에 대한 기대도, 조국의 사슬에서 오는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사회에서 자립해 나가는 이들은 오히려 그 과정에서 부닥치는 장벽을 각자 해결해 나가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이미 조국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남북의 벽을 뛰어넘어 월드컵 때는 함께 모여 한국을 응원하는 등 활발하게 교류할 수도 있다.

나아가 일본 사회로의 동화도 두드러진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 재일 코리안 중 동족과 결혼한 사람은 25.5%였던 반면 일본인과 결혼한 사람은 58.2%나 됐다. 귀화도 해마다 늘어 매년 1만∼1만5000명의 ‘재일교포’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자이니치들의 눈에 두 단체의 선언은 단순히 정치적 제스처로만 보이는 것이다. 차제에 소속감 없이 자립해 가는 동포 젊은이들에게 조국이 더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이들이 갖는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한국의 국력과 연결될 수도 있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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