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택]관타나모에서 본 美‘9·11테러 증후군’

  • 입력 2006년 5월 1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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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3박 4일 동안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를 다녀오면서 “9·11테러 이전과 이후의 미국은 전혀 다른 나라”라는 말을 실감했다.

미 해군기지 안에 있는 수용소이니 어느 정도 제약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통제와 제한은 훨씬 엄했다. 수용소에 근무하는 미군 장병과 수감자의 안전이 이유였다.

수감자의 신원 확인이 가능한 얼굴은 물론이고 옆모습의 사진 촬영도 금지됐다. 뒷모습과 손이나 발 같은 신체의 일부만 촬영이 허용됐다.

수용소 시설도 경비병이 근무 중인 초소나 2개 이상의 초소가 함께 잡히는 장면은 촬영 하지 못하게 했다. 비어 있거나 폐쇄된 곳만 촬영할 수 있었다.

하루 취재의 마지막 과정은 사진 검열. 국방부와 계약을 한 민간인 검열관이 디지털카메라를 노트북컴퓨터에 연결해 촬영 금지 대상 사진을 찾아내 삭제했다.

공항에서의 보안검색은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워싱턴으로 돌아오던 4일 한 공항에서는 세 번이나 탑승권 확인을 받아야 했다. “벌써 세 번째”라고 농담조로 말하자 검색 직원은 “다섯 번도 해요. 뭐 큰일입니까”라고 대꾸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신발을 벗는 것은 기본이고 종종 허리띠까지 풀어야 하는 번거로운 검색이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미국인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지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보안’과 ‘안전’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나라처럼 돼 버렸다.

법적으로 금지된 영장 없는 도청 사건이 발생해도 다수의 미국인은 용납할 수 있다거나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9·11테러 이후 국가안보국(NSA)이 통신회사들의 협조로 수백만 가정과 기업의 전화 통화 기록을 비밀리에 수집하고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온 사실까지 공개됐다.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들이 부러워하며 추구해 온 언론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 법의 지배와 권력기관 간의 상호견제와 같은 가치들을 어느 나라보다 더욱 소중하게 여겨 왔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자국민의 69%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여론조사기관 해리스의 최근 조사 결과)고 생각하는 ‘이상한 나라’가 돼 버렸다.

9·11테러로 인한 심각한 외상 증후군을 인정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권순택 워싱턴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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