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매맞는 경찰에게 공천비리 감시하라고?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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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13층 대청마루(회의실)에선 전국 지방경찰청 수사과장 및 정보과장 연석회의가 열렸다.

경찰청은 18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서 ‘검찰과 경찰이 공천비리 수사를 신고에만 의존한다’는 호된 질책을 받은 뒤 서둘러 이 회의를 소집했다.

이택순(李宅淳) 경찰청장은 “공천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 신고에만 의존하지 말고 첩보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 청장은 또 “한나라당이 김덕룡(金德龍) 박성범(朴成範) 의원 측의 금품 수수를 공개하기 전까지 경찰이 이를 전혀 알지 못했으니 대통령의 질책에 할 말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비리가 선거를 혼탁하게 만드는 부정부패의 뿌리라는 대통령의 인식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공천 헌금을 내고 당선된 사람은 이를 벌충하기 위해 또 누군가에게 돈을 거둬들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높은 분’이 현장의 실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선거는 전쟁이다. 근본적으로 윈윈 게임이 아니지 않은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수사하고 싶어도 자칫 관권선거 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한 일선 경찰서의 선거 수사 담당자의 말이다.

공천비리는 당사자 간의 ‘은밀한 거래’라는 점에서 일반 범죄와 달리 거래가 이뤄진 사실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검찰이나 경찰은 관련자의 제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 등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5·31지방선거를 40여 일 앞둔 시점에서 노 대통령의 질책은 철저한 선거 관리를 주문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혼탁한 선거전에 식상한 국민도 맑은 선거, 밝은 선거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정권은 무기력한 공권력을 탓하기에 앞서 공정한 법 집행을 하기 위한 환경을 얼마나 조성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노 대통령이 바라는 검찰과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는 ‘눈치 보지 않는 공권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경찰이 시위대에 맞아도 참아야 하는 현실에서 말 한마디로 힘센 사람들의 권력 다툼을 제대로 감시하라고 해서 그렇게 될 일이 아니다.

이재명 사회부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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